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 아래 작은 마을. 빈집이 열 채 중 세 채를 넘어선 이곳에 낯선 번호판의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서울에서 온 청년들은 텃밭을 가꾸고, 대전에서 온 가족은 폐교를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 마을 이장은 이들을 '손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생활인구'라는 행정 용어가 더 익숙해졌다.
행정안전부가 5월 9일 발표한 '고향올래 사업' 선정 결과는 이런 변화를 담고 있었다. 12개 지자체가 정주인구 대신 생활인구 유치로 방향을 틀었다. 완전히 이주하지 않아도 된다. 한 달에 며칠, 일 년에 몇 주만 머물러도 그 지역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생활인구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불과 3년 전이다.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 정주인구 증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이 용어가 품고 있는 질문은 더 깊다. 한 곳에 뿌리내려 사는 것만이 진짜 거주인가. 여러 곳을 오가며 사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1992)는 현대인의 공간 경험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공항, 고속도로, 대형마트 같은 곳을 그는 '비장소'라 불렀다. 역사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공간. 그저 통과하고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들이다. 하지만 오제는 이런 공간들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진안의 그 마을은 비장소일까, 장소일까. 주말마다 찾아오는 서울 청년에게 그곳은 분명 고향은 아니다. 하지만 텃밭에 심은 상추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이웃 할머니와 막걸리를 나누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방문지 이상이 된다. 완전하지 않은 소속, 느슨한 연결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수도권 인구는 260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0.7%를 차지한다. 비수도권은 2540만 명이다.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국내 관광 통계다. 2023년 한 해 동안 수도권 거주자의 비수도권 방문은 연인원 3억 2천만 명을 넘었다. 정주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고향올래 사업이 던지는 화두는 단순하지 않다. 인구를 숫자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관계의 밀도와 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사람이 365일 거주하는 사람보다 마을에 더 많은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신선한 시각과 외부 네트워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오제는 책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장소와 비장소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침투하고 변화한다. 진안의 작은 마을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주민과 생활인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마이산 아래 그 마을은 여전히 조용하다. 평일엔 노인들만 남아 있고, 빈집은 그대로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다시 활기가 돈다. 완전한 부활은 아니지만 완전한 소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마을은 숨을 쉬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 지방이 찾아가야 할 현실적인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