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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5월 2째주] 폐업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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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동네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았다. 주인 할머니는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월급을 올려도, 조건을 좋게 해도 오는 사람이 없단다. 30년 넘게 장사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일본에서 날아온 뉴스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고용지수 -37.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이 속출한다는 소식. 저출산과 고령화가 극단에 다다른 사회의 풍경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는 걸까?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2001년 미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기록한 책이다. 기자였던 저자는 웨이트리스, 청소부, 마트 직원으로 일하며 몇 달을 버텼다. 하루 8시간을 일해도 방 한 칸 구하기 어려운 현실. 두 개의 일자리를 뛰어도 의료보험 하나 들 수 없는 구조.

그녀가 만난 동료들은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아파도 참았으며, 모욕적인 대우도 견뎠다. 그럼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은 더 이상 존엄을 보장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집값은 더 빠르게 뛰었다. 플랫폼 노동은 자유를 약속했지만 더 깊은 불안정을 가져왔다. 일자리는 늘었다지만 괜찮은 일자리는 줄었다.

한국의 구인난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조건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 불규칙한 근무시간, 없는 것과 다름없는 복지. 이런 자리를 두고 인력난이라 부르는 게 맞나?

청년들이 일을 기피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거부하는 건 일 자체가 아니다.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일할수록 소진되는 몸, 일하는 동안 잃어버리는 시간. 이런 것들을 거부하는 거다.

폐업 소식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건 따로 있다. 왜 그 일자리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가? 무엇이 그 노동을 기피하게 만드는가? 일의 가치를 우리는 제대로 인정하고 있는가?

동네 식당 문 앞에 붙은 폐업 안내문을 다시 본다.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가 적혀 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이 감사 뒤에 숨은 것들이 보인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노동, 인정받지 못한 가치, 지속될 수 없었던 일터.

일본의 -37이라는 숫자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도 이미 그 길 위에 있는지 모른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사람이 일하고 싶은 조건을 만들었는지 돌아볼 때다.

한국 서비스업 인력부족률
출처: 한국고용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