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6월 3째주] 장애인 노동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그 오래된 벽을 마주하며

기사 듣기
스티그마
스티그마
어빙 고프먼
스티그마어빙 고프먼 · 1963

시급 635원. 2024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장애인의 평균 시급이다. 최저임금의 6.3퍼센트에 불과한 숫자. 한국일보가 지적한 '장애인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는 이 숫자 하나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한다.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때부터 존재해온 조항이다. 37년째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최저임금은 462.5원에서 1만원을 넘어섰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적용 제외라는 딱지만 붙어있다.

어빙 고프먼의 『스티그마』(1963)는 낙인이 어떻게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지 추적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제약이 아니다. 사회가 부여한 '결함 있는 존재'라는 낙인이 더 큰 장벽이 된다. 고프먼은 이를 '손상된 정체성'이라 불렀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법적 언어로 쓰인 낙인 아닐까.

2024년 기준 전국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장애인은 약 2만 명. 이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다. 보호작업장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노동은 훈련이 되고 임금은 훈련수당이 된다.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고프먼이 말한 '가상적 사회적 정체성'과 '실제 사회적 정체성' 사이의 간극이 여기에 있다.

장애인 노동을 둘러싼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생산성이다. 그런데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는가. 직업재활시설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 - 쿠키, 비누, 화분 - 이 시장에서 팔린다. 소비자는 그 제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돈을 지불한다. 그런데 왜 그것을 만든 사람의 노동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는가.

고프먼은 낙인찍힌 개인이 '정상인'과의 접촉에서 느끼는 긴장을 분석한다.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여질지 확신할 수 없다.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이런 부담을 제도화한다. 당신의 노동은 온전한 노동이 아니라고, 법이 선언하는 것이다.

2023년 장애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37퍼센트. 비장애인의 절반 수준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고, 일해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중의 배제 구조. 한국일보가 전한 하루 40명 자살이라는 숫자가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험이 축적될 때, 삶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워진다.

『스티그마』 출간 60년이 지났다. 그동안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식은 분명 나아졌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여전히 1988년의 시간이 흐른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라는 낙인은 그대로다. 고프먼이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우리는 무엇을 정상이라 규정하고, 그 경계 밖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시급 635원. 이 숫자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구성원의 존엄을 어디까지 인정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시혜의 수혜자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 볼 때, 비로소 이 숫자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경제활동 참가율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