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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6월 4째주] 최저임금

노동의 가격표 뒤에 숨은 삶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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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 앤 다임드
니켈 앤 다임드
바버라 에런라이크
니켈 앤 다임드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웨이트리스 유니폼을 입고 첫 출근을 했을 때 자신의 박사학위가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다. 2001년 출간된 『니켈 앤 다임드』에서 그녀는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실험을 했다. 플로리다의 식당, 메인주의 청소업체, 미네소타의 월마트. 세 곳을 전전하며 그녀가 발견한 건 단순한 진실이었다. 최저임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2025년 최저임금을 놓고 또다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노동계는 1만2600원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한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유독 팽팽하다.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물가는 여전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논의는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의 한 달 생계가 달린 문제다.

에런라이크가 웨이트리스로 일할 때 시급은 2.13달러였다. 팁을 합쳐도 시간당 7달러를 넘기 힘들었다. 그녀는 트레일러에서 살았고, 하루 두 끼로 버텼으며, 아플 때도 일을 쉴 수 없었다. 중산층 저널리스트였던 그녀에게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의 최저임금 노동자는 약 340만명이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5%가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편의점, 카페, 음식점에서 일한다. 주 40시간을 일해도 월 200만원을 받지 못한다. 서울에서 원룸 월세가 60만원을 넘는 현실에서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밥을 먹고, 집세를 내고, 교통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있을까.

에런라이크는 책에서 묻는다. 왜 우리는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은 돈을 주는가. 청소부, 요양보호사, 배달기사. 이들 없이는 하루도 돌아가지 않을 도시에서, 정작 그들의 노동은 가장 값싸게 취급된다. 최저임금 논의가 매번 대립으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다.

흥미로운 건 최저임금이 단순히 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전체 임금체계의 바닥을 결정한다. 바닥이 올라가면 전체가 함께 올라간다. 반대로 바닥이 낮으면 중간층도 함께 내려앉는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사회 전체의 임금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에런라이크가 월마트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존엄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고,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으며, 매 순간 감시당하는 삶. 최저임금 논의에서 빠지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숫자만 보고 있지,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삶을 보지 못한다.

2025년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든, 근본적인 질문은 남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에런라이크는 실험을 마치고 중산층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340만명의 한국인들에게 최저임금은 실험이 아닌 현실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에런라이크는 고백한다. 자신이 견딘 건 불과 몇 개월이었지만, 함께 일한 동료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고. 그들에게 희망이란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있는 것, 아이에게 새 신발을 사줄 수 있는 것 정도다. 최저임금 1만2600원과 동결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를 보여줄 것이다.

한국 최저임금 실질상승률
출처: 최저임금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