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씨는 부동산 앱을 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서울 외곽 원룸 월세가 80만 원을 넘었다. 신혼 2년차, 아내와 함께 사는 투룸 월세는 120만 원이다. 정부가 발표한 신생아 특례 대출 소식을 들었지만, 그의 손가락은 멈춰있다. 아이를 낳으면 1억 원 대출, 월세 3만 원 지원. 숫자는 크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월세 3만 원. 하루 천 원이다. 커피 한 잔도 안 되는 돈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을까. 정책 입안자들은 이 금액이 젊은 부부들의 고민을 덜어줄 거라 믿었을까. 아니면 그저 '무언가 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했을까.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말한다. 언어가 현실을 규정한다고. 우리가 문제를 명명하는 방식이 해결책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저출생 대책'이라는 이름 아래 나온 주거 지원책들을 보면, 정책 입안자들이 보는 현실과 청년들이 사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의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18년 42%에서 2023년 68%로 뛰었다. 5년 만에 시장 구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월세 사회로의 전환. 이게 무얼 의미하는가. 매달 나가는 돈은 늘고, 모을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자산 축적의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된다는 의미다.
김민수 씨 부부의 월 소득은 600만 원이다.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월세와 관리비로 140만 원이 나간다. 식비, 교통비, 통신비를 빼고 나면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저축한다. 이 속도로는 서울 아파트 전세금을 모으는 데 30년이 걸린다. 그사이 전세금은 또 얼마나 오를까.
솔닛은 묻는다.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가. 정책 발표문에서 청년들은 늘 수혜자로만 등장한다.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이들은 매일 치열하게 계산하고, 선택하고, 포기한다. 단지 그 이야기가 정책 언어로 번역되지 않을 뿐이다.
월세 3만 원 지원을 받으려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 순서가 이상하지 않은가. 주거가 안정되어야 아이를 생각할 텐데, 아이를 낳아야 주거 지원을 받는다니. 이런 본말전도가 가능한 건, 청년들의 삶을 통계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출생률이라는 숫자를 올리기 위한 도구로만 보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 꿈이 사라진 도시에서, 청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김민수 씨 부부도 그렇다. 아이 계획을 미루는 대신, 자기 계발에 투자한다. 작은 취미를 즐긴다.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 없이, 오늘을 산다. 이게 체념일까, 현실적 선택일까.
정책은 늘 뒤늦게 온다. 현실이 바뀌고 한참 뒤에야 제도가 따라온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라오는 방식이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선택 문제로 환원시킨다. 주거 불안정을 출생률 저하의 원인으로만 본다. 그래서 나오는 해법이 월세 3만 원이다.
김민수 씨는 다시 휴대폰을 든다. 부동산 앱이 아니라 일기 앱을 연다. 오늘도 아내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고 적는다. 작은 행복들을 기록한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저항의 방식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정책이 규정하는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