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그 집의 월세는 얼마인가. 만약 정부가 월세 3만원짜리 집을 준다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
정부가 신생아를 낳으면 1억원대 주택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금리는 연 1.6~3.3%로 시중보다 낮다. 월세도 3만원대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출산하면 집을 해결해주겠다는 파격적 제안이다. 정책 이름은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이다.
2024년 출시된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의 신청 건수는 6개월 만에 10만 건을 돌파했다. 5억 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연 1.6~3.3%의 금리를 제공하는 이 상품에 신혼부부들이 쇄도했다. 정부는 성과를 자축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5억 원 이하 아파트를 찾는 일 자체가 이미 모험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매튜 데스몬드는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쫓겨난 사람들』에서 밀워키 빈민가의 세입자 8가구를 추적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다. 퇴거가 빈곤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집을 잃으면 직장을 잃고, 직장을 잃으면 건강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주거 불안정이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인 셈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6.9%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30%, 오스트리아 24%, 영국 17%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전체 주택의 93%가 민간 시장에 맡겨져 있다는 뜻이다. 이 구조에서 금리를 낮춰주는 정책은 진통제에 가깝다. 통증은 잠시 줄어들지만 병의 원인은 그대로 남는다.
데스몬드가 제시한 해법은 명확했다. 주거를 교육이나 의료처럼 보편적 공공재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이 보장될 때, 비로소 출산도 양육도 가능해진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집을 주겠다는 발상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읽는 것이다.
『쫓겨난 사람들: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포착하는 주거 문제의 핵심은 집이 삶의 공간이 아닌 투자 자산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부동산 시장의 논리가 주거권을 압도하면서,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한국의 주거 불평등은 세대 간 격차와 겹쳐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부모 세대의 자산이 자녀 세대의 주거 환경을 결정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은 점점 더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다.
전세 제도라는 한국 고유의 주거 형태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저금리 시대의 종언과 함께 전세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것은 이 구조적 변화의 한 징후다.
주거 정책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로,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이런 전환은 기존 자산 보유자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매튜 데스몬드이 묻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투자자를 위한 상품인가, 시민을 위한 권리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한국 주거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1.6% 금리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부부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30년 상환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동안, 그 가정에는 여유가 있을까.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빚의 근거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짓고 있는 것일까.
서울 관악구에서 쪽방에 사는 김 씨의 월세는 3만 원이다. 방 크기는 1.5평. 누우면 벽에 발이 닿는다. 화장실은 복도 끝 공용이고, 샤워실은 2층에 하나뿐이다. 그는 이곳에서 7년째 산다. 처음엔 잠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말한다.
매슈 데스몬드의 『쫓겨난 사람들』은 미국 밀워키의 빈곤층 주거를 추적한 르포다. 데스몬드는 가난한 사람들이 소득의 70~80%를 집세로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을 잃으면 직장을 잃고, 직장을 잃으면 다시 더 나쁜 집으로 밀려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데스몬드는 강제퇴거 체제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이 체제는 전세사기라는 이름으로 작동한다.
2024년 기준 전국 쪽방 거주자는 약 6,800명이다. 평균 연령 62세. 이들의 월 소득은 40~60만 원 사이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식비로 쓸 돈은 하루 5천 원 남짓이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한다고 말하지만, 쪽방촌 주민이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데스몬드는 주거를 인권의 문제로 재정의했다. 집이 없으면 주소가 없고, 주소가 없으면 투표도, 취업도, 아이의 학교 배정도 불가능하다. 월 3만 원의 쪽방은 저렴한 주거가 아니다. 시민권의 최저선이다. 그 선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이 기사는 도서 리뷰를 통해 주거 문제의 근본적 요인을 진단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부의 주택 지원 정책이 증상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거를 공공재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