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 어느 작은 포구. 아침 안개가 걷히면 드러나는 것은 텅 빈 배들이다. 한때 새벽부터 어부들의 발소리로 요란했을 선착장엔 이제 갈매기 울음소리만 메아리친다. 정부가 어촌 생활물가 안정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촌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손가락이 굵어진 할머니들이 그물을 손질한다.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을회관 앞 평상엔 허리 굽은 노인들이 앉아 바다를 본다. 그들이 보는 것은 바다일까, 지나간 시간일까. 행정안전부는 피서지 바가지요금을 없애고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물가를 잡는다고 사라진 젊음이 돌아올까.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초고령사회의 풍경을 담담히 그려낸다. 2009년 출간된 이 책은 혼자 늙어가는 것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고령화를 재앙이 아닌 변화로 보는 시선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어가인구 추이를 보면 숨이 막힌다. 2018년 11만3천명이던 어가인구는 2023년 8만7천명으로 줄었다. 5년 만에 23퍼센트가 사라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65세 이상 비율이다. 같은 기간 38.5퍼센트에서 47.2퍼센트로 뛰어올랐다. 절반에 가까운 어민이 노인이라는 뜻이다.
우에노는 묻는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은 가능한가. 그녀의 질문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어촌의 빈 집들, 문 닫은 횟집들, 녹슨 어선들이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신기하게도 정부 정책은 늘 '활성화'를 말한다. 어촌 활성화, 지역 활성화, 경제 활성화. 마치 죽어가는 것을 억지로 살리려는 듯하다. 하지만 우에노의 시선은 다르다. 그녀는 쇠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의 방식을 찾자고 한다. 혼자 살기의 기술은 곧 홀로 늙기의 지혜가 된다고.
어촌만의 문제일까. 도시도 늙어간다. 아파트 경로당엔 사람이 넘치고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다. 병원 대기실은 노인들로 가득하고 산부인과는 문을 닫는다. 고령화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주할 미래다. 아니, 이미 현재다.
물가 안정 정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텅 빈 어촌에 필요한 것이 정말 저렴한 생필품일까. 우에노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경제적 자립, 사회적 연결, 정신적 독립. 이 세 가지가 품위 있는 노년의 조건이라고.
다시 그 포구로 돌아가 보자. 안개가 걷힌 바다는 여전히 푸르다. 변한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름진 얼굴엔 세월이 새겨져 있다. 정부의 정책 발표를 들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물가가 내려가면 젊은 날이 돌아올 거라고 믿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것임을. 우에노가 말하는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바로 그것이다. 쇠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용기. 어촌의 고령화가 우리에게 묻는 것도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