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촌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도시의 대응은 느리게 움직인다.
행정안전부가 피서지 물가 안정을 위해 내놓은 서비스에는 한 줄의 설명이 덧붙여 있었다. 어촌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피서철 바가지요금을 잡겠다는 정책 브리핑 속에 스며든 이 문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젊은이들이 떠난 바닷가 마을에서 노인들이 관광객을 맞는 풍경. 그들에게 바가지요금은 어쩌면 생존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엔솔바이오가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것도, 명인제약이 정신질환 치료제로 IPO 시장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령화로 시장이 빠르게 커진다는 설명. 그런데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곧 아픈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업가치 8500억원이라는 숫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망각과 불안이 숨어 있을까.
미국의 의사 셔윈 눌랜드가 쓴 책 한 권이 떠오른다.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올렸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죽음은 더 복잡해진다고 했다.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이 늘어날수록 언제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고도 했다. 1993년에 나온 이 책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치매 환자가 늘어난다. 치료제 시장이 커진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고령화의 한 면이다. 그런데 눌랜드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의학의 발전이 꼭 존엄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때로는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
보험사들도 고령화를 주시한다. 기본자본 규제가 도입되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노후 대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대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 양극화는 노년에도 계속된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25년에는 2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 진입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치료제 개발과 보험상품 판매만으로 충분한가. 어촌의 노인들이 바가지요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
눌랜드는 의사였지만 의학의 한계를 인정했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고, 다만 그 과정을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들 수는 있다고 썼다. 고령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장의 기회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
빠른 노화와 느린 적응. 이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개발되고 IPO 시장이 활황을 맞아도, 어촌의 노인들은 여전히 바가지요금으로 욕을 먹는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