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5.8%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 숫자는 언뜻 희망적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의 8.0%와 비교하면 확연히 개선된 수치다. 하지만 체감 실업률이라 불리는 확장실업률은 여전히 20%를 웃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시간제 일자리로 버티거나, 구직을 포기한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번 주 발표한 '청년일자리 강소기업 인증제'는 이런 현실에 대한 정부의 응답이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을 정부가 직접 인증하겠다는 것이다. 임금 수준, 고용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 등을 종합 평가해 우수 기업에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청년들은 이 마크를 보고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고, 기업은 인재 확보가 수월해진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좋은 일자리'를 정의하고 인증한다는 발상 자체가 묘한 위화감을 준다. 무엇이 좋은 일자리인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고용이 모든 청년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올까. 워라밸을 중시하는 청년과 성장 기회를 우선하는 청년의 기준은 같을 수 없다.
리처드 세넷의 『장인』은 이 질문에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중세 길드부터 현대 기업까지 일의 역사를 추적하며, 좋은 일이란 단순히 조건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장인에게 일이란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행위였다. 보수나 안정성은 부차적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일 자체가 주는 보람과 성취감이었다.
세넷은 현대 자본주의가 이런 장인 정신을 파괴했다고 진단한다. 효율성과 표준화를 추구하는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는 톱니바퀴가 되었고, 일의 의미는 임금으로 환원되었다. 정부의 인증제 역시 이런 환원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가. 복잡하고 다층적인 일의 가치를 몇 가지 지표로 단순화하려는 시도 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증제가 청년과 기업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청년들이 '인증'이라는 보증서가 필요할 만큼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수습 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관행들.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인증 마크만 붙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세넷이 강조하는 것은 일터의 민주주의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발언권을 갖고, 작업 과정에 참여하며, 기술 향상의 기회를 보장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좋은 일자리의 핵심 조건이다. 하지만 인증 기준 어디에도 이런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을 평가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행위 자체가 시장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로운 노동시장에서는 좋은 기업이 자연스럽게 인재를 끌어당기고, 나쁜 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청년들은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기업들은 그 틈을 파고든다.
인증제는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비대칭이 발생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실제 근무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조건과 실제 근무 환경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 없이 인증제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다시 처음의 숫자로 돌아가 보자. 청년 실업률 5.8%라는 수치 뒤에는 수많은 개인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부가 보증하는 안전한 일자리만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으며, 동료와 함께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일터. 세넷이 말하는 장인의 작업장처럼, 일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는 그런 곳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