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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9월 2째주] 의료 공백

병원 복도의 침묵이 말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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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병리학
권력의 병리학
폴 파머
권력의 병리학폴 파머 · 2003

대학병원 응급실 복도는 새벽 두 시에도 형광등 불빛 아래 하얗게 빛난다. 의자에 기댄 환자들,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 간호사들, 그 사이를 비집고 움직이는 이송 침대. 2025년 9월, 이 풍경에서 무언가 빠진 게 있다면 그건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들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은 병원 복도는 예전보다 조용하다.

지씨지놈이 지난해 의료파업 여파로 주춤했던 실적을 1년 만에 회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암 진단 서비스 '아이캔서치'의 확대를 준비한다고 한다.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법을 안다. 하지만 병원 복도를 걷는 환자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이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폴 파머는 말했다. 의료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 되어버렸다고.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그는 아이티와 르완다의 빈민가에서 진료소를 운영했다. 선진국 병원과 제3세계 진료소 사이를 오가며 그가 본 것은 단순한 의료 격차가 아니었다. 같은 병이 어디서는 치료되고 어디서는 죽음이 되는 현실. 그 경계선이 국경만이 아니라 계급과 지역, 그리고 시스템의 작동 여부에 따라 그어진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 아니, 작동하고 있기는 한가. 2025년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의 20~30%가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나머지는?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병원들은 진료 시간을 줄이고 수술을 연기한다.

파머가 쓴 《권력의 병리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통찰이다. 조금씩, 천천히, 마치 당연한 것처럼 무너진다. 처음엔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다음엔 특정 진료과가 문을 닫는다. 그 다음엔 지방 병원이 폐업한다. 사람들은 적응한다. 아프지 않으려 노력하고, 아파도 참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듣는 뉴스는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사들은 의사대로 자신들의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정작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 차례는 언제 올까. 아니면, 과연 올까.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23년 기준 2.6명이다. 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이 숫자가 모든 걸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서울엔 의사가 넘치고 지방엔 부족하다. 성형외과는 포화 상태고 소아청소년과는 텅 비어간다. 숫자의 문제일까, 배치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의료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의 문제일까.

파머는 의료를 '해방의 실천'이라 불렀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 그에게 의사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부정의에 맞서는 사람이었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의사도 먹고살아야 하고,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한다. 그래도 가끔은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의사가 되려 했던가. 무엇을 위해 병원을 세웠던가.

지씨지놈의 암 진단 서비스가 확대된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기술은 발전하고 진단은 정확해진다. 하지만 진단받은 다음은? 치료할 의사가 부족하다면, 병원에 갈 여력이 없다면, 그 정확한 진단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기술의 발전이 곧 의료의 발전은 아니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기술은 또 다른 불평등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시 병원 복도로 돌아가보자. 형광등은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환자들은 여전히 기다린다. 전공의들이 돌아와도, 의대 정원이 늘어도, 이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의료를, 건강을, 서로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파머가 죽기 전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의료는 결국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멈춰 서는 일이라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멈춰 서고 있나.

OECD 국가별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
출처: OECD Health Statis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