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어느 날, 충남 공주시 유구읍을 떠올린다. 119억원이 투입된 LPG 배관망이 땅속에 묻혀있다. 1288가구를 위한 사업이었다. 2024년 이 읍의 출생아는 단 3명이었다.
숫자가 말하는 건 명확하다. 사업 계획서에는 1288가구가 혜택을 받을 거라 적혀있었다. 실제로 몇 가구가 남아있을까.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동네에서 새로 깔린 배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조한혜정의 『탄생과 죽음』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생명력의 위기를 다룬다. 저자는 묻는다. 왜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유구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 읍면 단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프라는 깔리는데 사람은 떠난다. 계획은 세워지는데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행정은 숫자로 말하지만 현실은 다른 언어로 답한다.
배관망 사업이 시작된 2023년 9월, 아마도 회의실에는 희망적인 전망이 가득했을 것이다. 도시가스 대신 LPG라도 공급하면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난방비가 줄어들면 젊은 세대도 돌아올 거라고.
그러나 인프라만으로는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다. 조한혜정은 이렇게 쓴다. 공동체가 먼저고, 그 다음이 시설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빈 껍데기만 남는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됐다. 정책 용어로 포장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개인의 선택이 있다. 떠나기로 한 사람들, 남기로 한 사람들. 그들에게 119억원의 배관은 어떤 의미일까.
유구읍의 2024년 출생아 3명. 이들이 성인이 되는 2044년, 그 배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사업 계획서 속에서 '노후 시설 교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는 현재가 이미 미래를 결정해버린다. 텅 빈 배관 속을 흐르는 건 가스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