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 논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1288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2023년부터 땅이 파이기 시작했다. 119억원을 들여 LPG 배관을 묻는다고 했다. 2025년이면 모든 집에 가스가 들어온다고 했다.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도로는 파헤쳐졌다가 다시 메워졌고, 배관은 땅속 깊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2024년 이 읍에서 태어난 아이는 단 3명이었다. 배관은 늘어났지만 사람은 줄어들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런 풍경에 익숙해졌다. 인프라는 확충되는데 그것을 쓸 사람은 사라진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그 미래가 도래할 때쯤이면 마을 자체가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
조해진의 소설 『빛의 호위』(2017)에는 비슷한 역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도 각종 개발 사업이 밀려든다. 도로가 넓어지고 가로등이 밝아진다. 하지만 정작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간다. 빛은 늘어났는데 그 빛을 받을 사람이 없다.
소설 속 한 인물은 묻는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 떠나버린 과거를 위한 것인가. 그 물음은 유구읍의 땅속에 묻힌 배관처럼 무겁다.
한국의 지방소멸 위기 지역은 2023년 기준 89개에서 2024년 106개로 늘어났다. 전체 시군구의 46.7%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출생아 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지역이 속출한다. 그런데도 각종 인프라 사업은 멈추지 않는다.
물론 삶의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르게 읽힌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LPG 통을 교체하며 사는 노인들에게 배관망은 절실한 문제다. 겨울마다 무거운 가스통을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119억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돈으로 젊은 가족들이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었다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출생률 3명이라는 숫자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빛의 호위』이 소멸하는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조해진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소멸하는 마을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조해진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소멸하는 마을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소멸하는 마을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빛의 호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텅 빈 마을의 가로등 아래 선다. 환하게 밝혀진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빛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누군가를 비추지 못한다면 그저 허공을 향한 몸짓일 뿐이다.
유구읍 석남리의 집들도 곧 가스 배관과 연결될 것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따뜻함을 느낄 사람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우리가 만드는 미래는, 정말 사람을 위한 미래인가.
논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 떠나버린 과거를 위한 것인가.
하지만 119억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