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날이었다. 그의 표정엔 안도와 피로가 섞여 있었다. 20년을 기다린 개혁이었다. 그런데 왜 마음 한구석이 무거울까. 복도를 걸으며 그는 생각했다. 이제 검사들은 수사하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는 기소만 한다. 깔끔한 분리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도식보다 복잡하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감내하기 어려운 혼란을 부를 것이라고. 그 혼란이란 무엇일까. 수사와 기소를 나누면 책임도 나뉜다. 경찰이 잘못 수사하면 검사 탓이 아니다. 검사가 잘못 기소하면 경찰 탓이 아니다. 서로 책임을 미룰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미루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2022년 10월, 한 검사가 진술을 받았다. 대통령 경선자금을 전달했다는 진술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냥 석방했다. 왜였을까. 수사기관이 가진 재량이다. 그 재량을 누가 견제하나. 지금까지는 검찰 내부에서 견제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을 해부했다. 권력은 중앙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고 했다. 검찰 권력도 마찬가지다. 검사 한 명이 가진 권한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스며든 문화와 관행이 진짜 권력이다. 그래서 조직을 쪼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를 바꿔야 한다.
푸코는 또 이렇게 썼다. 권력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고. 검찰 권력도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누가 수사받아야 하고 누가 면제되는지를 결정한다. 이 결정권이 이제 두 기관으로 나뉜다. 경계를 긋는 손이 둘이 된다는 뜻이다.
한국의 검찰 수사권 보유 비율은 2020년 기준 전체 형사사건의 4.3퍼센트였다. 2023년에는 1.2퍼센트로 줄었다. 이제는 0퍼센트가 된다. 숫자로 보면 깔끔하다. 하지만 그 1.2퍼센트가 어떤 사건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정치인, 재벌, 고위 공무원 관련 사건들이었다. 권력형 비리였다. 이제 그 수사를 경찰이 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 돈 받은 의원들만 손해 볼 거라고. 농담처럼 들리지만 뼈가 있다. 검찰이 수사하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이제 경찰이 수사한다. 경찰은 검찰만큼 정치권과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가까워질까. 알 수 없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연방주의자 논집』의 관점에서 보면, 검찰 권력의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보유한 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란 제도적 장치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검찰 개혁 논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 하지만 그 방향은 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집권 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혁의 칼날이 향하면서, 정작 시민을 위한 사법 정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남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책상 위엔 개혁안 최종본이 놓여 있었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새로운 이름들이다. 이름을 바꾸면 본질도 바뀔까. 그는 창밖을 보았다. 검찰청 건물이 보였다. 곧 간판이 내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남는다. 권력의 형태는 바뀌지만 권력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자리를 옮길 뿐이다.
권력분립의 역사는 곧 인간 불신의 역사다.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설계한 것도, 매디슨이 연방주의자 논집에서 야심은 야심으로 견제해야 한다고 쓴 것도 모두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특히 권력을 쥔 인간은.
한국 검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불신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검찰은 늘 정치권력의 칼이었다. 때로는 독재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고, 때로는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가 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검찰의 70년 역사는 집중된 권력이 독재 유지, 정적 제거 등으로 악용돼온 사례다.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임을 보여준다.
26년간의 개혁 논의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저항으로 개혁이 지연돼왔다. 이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의 저항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호한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한다.
국민·검찰·정치 간 상호불신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권력의 분산이 필수적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지만, 권력 남용의 위험을 낮추는 제도 설계가 민주주의 강화의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