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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1월 4째주] 천원의 무게

인천의 '천원 시리즈'가 묻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삶의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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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피에르 부르디외 · 1979

당신은 오늘 천원으로 무엇을 샀는가. 커피 한 잔도 사기 어려운 돈이다. 그런데 인천에선 천원으로 하루 집세를 낸다. 택배를 보낸다. 빨래를 맡긴다. 이상한 일이다.

인천시가 내놓은 '천원 시리즈'가 화제다. 하루 천원 임대주택, 천원 택배, 천원 세탁. 청년들이 몰렸다. 당연하다. 서울 원룸 월세가 60만원을 넘는 시대 아닌가. 택배비 5천원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이렇게 썼다. 취향이란 필연성을 덕목으로 만드는 기술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이 '소박한 삶'을 택하는 건 선택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천의 천원은 그 필연성에 균열을 낸다.

부르디외가 1970년대 프랑스 노동자들을 관찰했을 때도 비슷했다. 이들은 비싼 와인 대신 맥주를 마셨다. 오페라 대신 축구를 봤다. 선택인가, 강요인가. 부르디외는 물었다. 계급이 취향을 만드는가, 취향이 계급을 만드는가.

천원이라는 가격은 묘하다. 공짜도 아니고 시장가격도 아니다. 자선도 아니고 거래도 아니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질문을 만든다. 주거는 권리인가 상품인가. 생활 서비스는 어디까지 공공재여야 하는가.

최근 통계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전국 청년 1인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계속 늘고 있다.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퍼센트를 넘으면 '주거빈곤'으로 본다. 서울은 이미 그 선을 넘었다. 인천도 멀지 않았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란 개념도 만들었다. 경제자본만큼 중요한 게 문화자본이라고 했다. 교육, 언어, 매너, 취향. 이런 것들이 계급을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주거는 어떤 자본인가.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인가.

천원 주택에 사는 청년들은 무엇을 얻는가. 안정? 여유? 아니면 다른 무언가? 월세 30만원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학원을 다닐까, 여행을 갈까, 저축을 할까. 선택지가 생긴다는 것. 그게 자유 아닌가.

부르디외가 지금 인천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할까. 아니면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창의적 저항이라고 평가할까. 둘 다일 것이다.

결국 천원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품위는 보장받는 사회인가. 천원은 가격이 아니다. 물음표다.

전국 청년 1인가구 월평균 주거비
출처: 통계청 가계동향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