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 천원으로 무엇을 샀는가. 커피 한 잔도 사기 어려운 돈이다. 그런데 인천에선 천원으로 하루 집세를 낸다. 택배를 보낸다. 빨래를 맡긴다. 이상한 일이다.
인천시가 내놓은 '천원 시리즈'가 화제다. 하루 천원 임대주택, 천원 택배, 천원 세탁. 청년들이 몰렸다. 당연하다. 서울 원룸 월세가 60만원을 넘는 시대 아닌가. 택배비 5천원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천시의 천원 시리즈는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됐다. 하루 천원 임대주택에는 신청 첫 달 2,400명이 몰렸고, 경쟁률은 12대 1을 넘겼다. 천원 택배와 천원 세탁소에도 대기열이 이어졌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천원이라는 가격이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격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9년 출간한 『구별짓기』에서 취향이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계급 구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사는지가 모두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시선으로 보면, 천원 임대주택에 몰리는 청년들의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구조적 강제에 가깝다.
2024년 기준 서울 청년 1인 가구의 월평균 주거비는 54만 8천 원이다. 월급의 30%를 넘기는 이들이 허다하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청년의 첫 주거지가 결정되고, 그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강남에서 시작하는 사회생활과 고시원에서 시작하는 사회생활 사이의 거리는 단순히 지리적 차이가 아니다.
천원이라는 가격표는 상징적이다. 시장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공이 개입하지 않으면 청년의 일상이 유지될 수 없다는 고백이며, 동시에 시장이 실패한 영역을 정부가 메꾸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천원짜리 정책이 구조적 불평등의 뿌리까지 건드릴 수 있을까.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이 천원의 무게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피에르 부르디외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천원의 무게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피에르 부르디외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천원의 무게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천원의 무게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통찰을 빌리면, 천원의 무게은 단순한 정책 과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을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지 않고서는 어떤 해법도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부르디외는 지배 구조가 교육과 문화를 통해 재생산된다고 보았다. 천원 임대주택에 사는 청년과 부모가 마련해준 아파트에 사는 청년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책의 온정이 구조의 냉혹함을 가릴 때, 우리는 진짜 문제를 놓치게 된다.
인천시의 천원 정책은 단순한 복지 사업이 아니다. 이것은 가격이라는 언어로 계급을 드러내는 실험이다. 서울에서 원룸 월세가 평균 62만 원을 넘고, 전세보증금 사기로 수천 명이 거리에 나앉는 시대에, 하루 천원이라는 숫자는 질문이 된다. 우리는 얼마를 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취향이 곧 계급이라고 말했다. 커피 한 잔, 택배 한 건, 세탁 한 번의 가격이 사람을 나눈다. 5천 원짜리 라떼를 마시는 사람과 편의점 믹스커피를 마시는 사람 사이에는 취향의 차이가 아닌 구조적 불평등이 있다. 부르디외가 파리의 미술관에서 발견한 계급의 작동 원리가 인천의 천원 세탁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4년 기준 한국 청년 1인가구의 월평균 주거비는 48만 원이다. 소득의 30%가 넘는다. OECD 기준 주거비 과부담 가구에 해당한다. 천원 임대주택에 몰린 청년들의 경쟁률은 127대 1이었다. 이 숫자는 정책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증명한다. 수요가 폭발한다는 건, 시장이 이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르디외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천원으로 빨래를 할 수 있게 된 청년은 과연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천원짜리 삶에 길들여지고 있는가. 정책이 가난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천원에 의지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가격표 뒤에 숨은 구조를 읽는 일, 그것이 부르디외가 사회학에 요구한 것이었다.
이 정책이 청년들의 주거와 생활비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천원의 상징성을 통해 사회 계급 구조와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정책의 향후 전개 양상과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