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을 본다. '안전모 착용 의무화' '작업 전 위험성 평가 실시' 같은 문구들이 늘어났다. 예전엔 없던 것들이다. 사무실에서도 매년 안전교육을 받는다. 온라인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수증은 받는다. 회사는 이수율을 관리한다.
지난 22일, 법무법인 광장이 기존 산업안전팀을 '중대재해 대응센터'로 확대 개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형 로펌이 중대재해를 전담하는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장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이 보는 시장의 신호는 무엇일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를 추적했다. 과거의 권력이 공개처형으로 위력을 과시했다면, 근대의 권력은 규율과 감시를 통해 스스로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신체를 직접 고문하는 대신, 시간표와 규칙으로 길들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기업들은 안전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컨설팅을 받고, 매뉴얼을 작성한다. 법무법인들은 이 과정을 상품화한다. 사고를 막는 것이 아니라 처벌을 피하는 방법을 판다. 안전이 법률 서비스가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될까.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은 처벌의 공포가 아니라 정상성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따라야 할 표준, 절차, 양식. 중대재해 대응도 마찬가지다. 서류는 완벽해진다. 체크리스트는 빈틈없이 채워진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공장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죽는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2023년 기준 근로자 10만명당 5.0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독일(0.8명)의 6배가 넘는다. 법은 강화됐지만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법이 강화될수록 죽음은 더 교묘하게 숨을 수도 있다.
로펌의 중대재해 대응센터는 무엇을 대응하는가. 사고인가, 처벌인가. 그들이 만드는 완벽한 서류 뒤에서, 위험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하청의 하청으로, 비정규직으로, 이주노동자에게로. 법의 언어가 닿지 않는 곳으로.
푸코는 감옥이 범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형태로 만든다고 했다. 비행을 범죄로, 범죄자를 비행자로 순환시키는 시스템. 중대재해처벌법도 비슷할지 모른다. 사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전환하는 것. 죽음을 법률 문서로 번역하는 것.
내일도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그 안내문을 볼 것이다. 안전교육도 받을 것이다. 이수증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일하다 죽을 것이다. 우리가 작성하는 완벽한 서류들이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우리의 책임을 면하게 해줄 뿐일까.
법무법인이 중대재해를 상품으로 만드는 시대. 안전이 컨설팅이 되고, 생명이 리스크 관리가 되는 시대. 푸코가 본 감시와 처벌의 체계는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 모두를 순종적인 신체로 만들면서도,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못하게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