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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4째주] 중대재해 대응센터

법무법인들이 앞다퉈 만드는 센터가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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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 · 1975

서울 테헤란로의 한 대형 법무법인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각 층마다 부서명이 적혀 있다. 기업법무본부, 금융본부, 공정거래본부... 그런데 최근 새로운 이름이 추가됐다. 중대재해 대응센터. 광장을 비롯한 주요 로펌들이 앞다퉈 이런 전담 조직을 만들고 있다.

센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팀도 아니고 TF도 아닌 센터. 의료계에서나 쓸 법한 이 명칭이 법조계에 등장한 건 우연일까. 응급실처럼 24시간 대기하며 사고 발생 즉시 달려간다는 의미일 테다. 실제로 이들은 사고 현장에 변호사를 급파하고, 증거를 보전하고, 대응 매뉴얼을 작동시킨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사회가 어떻게 규율 권력을 작동시키는지 분석했다. 감옥이 생기고, 병원이 생기고, 학교가 생기면서 인간의 몸은 관리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선 법무법인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산업 현장의 몸들을 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 이 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 전문가를 영입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고는 계속됐다. 2024년에만 산업재해 사망자가 800명을 넘었다.

법무법인들이 센터를 만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건 벌금이나 영업정지가 아니다. CEO가 구속되는 것이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여러 대표이사가 구속됐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안전 컨설팅이 아니라 법률 방어막이다.

푸코는 이렇게 썼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을 생산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법률 서비스 시장을 생산했다. 로펌들은 예방 컨설팅부터 사고 대응, 형사 변호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치 병원이 예방의학과 응급의학을 함께 운영하듯.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볼까. 자신들의 안전이 법률 서비스의 대상이 된 현실을. 사고가 나면 변호사가 먼저 달려오는 시스템을. 그들에게 센터는 안전망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감시망일까.

테헤란로의 그 건물로 돌아가보자. 센터라는 이름표가 붙은 사무실에선 지금도 변호사들이 판례를 분석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대응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안전일까, 면책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21세기의 규율 권력은 이렇게 시장의 언어로 작동한다.

연도별 산업재해 사망자 수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