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초고령사회라는 무거운 이름표가 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노인이 많아질수록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길은 오히려 좁아지고 있다.
유산기부를 활성화하는 법안이 또다시 국회 문턱에서 멈춰 섰다. 2019년부터 수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대신 공익법인에 기부를 유도하자는 단순한 아이디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인데, 한국에서는 왜 이리 어려운가.
표면적 이유는 늘 비슷하다. 세수 감소 우려, 편법 증여 가능성, 공익법인 관리 문제.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혹시 우리는 죽음 이후의 재산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을 불효로 여기는 문화가 여전히 강한 건 아닐까.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한국 가족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주인공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자 가족들은 그녀의 입을 벌려 강제로 고기를 집어넣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폭력은 사실 소유의 문제다. 부모는 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자기 것으로 여긴다.
이런 소유 관념은 죽음 앞에서도 이어진다. 재산은 당연히 자식에게 가야 하고, 그것이 가족애의 증명이 된다.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은 이런 관념 체계에서는 일종의 배신이다. 가족을 저버리는 행위로 읽힌다.
물론 현실적 이유도 있다.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극심하다. 집 한 채가 평생 노동의 대가인 사회에서, 그 집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끊는 일이다. 부모 세대는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유산은 그 소망의 마지막 표현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유산이 자식의 삶을 나아지게 할까? 아니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될까? 상속 갈등으로 형제가 원수가 되고, 재산 싸움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유산기부법이 통과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가족을, 재산을,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문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은 죽음을 더 자주 마주한다는 뜻이다. 그 죽음들이 남기는 것이 무엇이어야 할지,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20%라는 숫자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늙어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재산인가, 가치인가. 혈연인가, 공동체인가. 유산기부법의 운명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