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지난 한 해 병원에 몇 번이나 갔는가. 아프지 않아서 가지 않았는가, 아니면 갈 수 없어서 참았는가. 의료 파업이 끝나고 보험금 청구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미뤄둔 진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파업이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 사람들. 그들이 품고 있던 것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치료받을 권리를 유예당한 시간, 의사와 환자 사이에 놓인 제도의 벽, 그리고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무력감.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언제나 효율성을 자랑해왔다.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의 의료비로 최고 수준의 기대수명을 달성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파업 하나로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시스템을 과연 견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누구를 위한 효율성이었는가.
빈센트 나바로는 『의료와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쓴다. 의료는 결코 중립적인 과학이 아니며,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정치적 영역이라고. 의사의 전문성이라는 이름 아래 환자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건강은 개인이 관리해야 할 자산이 된다. 아프면 일할 수 없고, 일할 수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질병은 곧 추락이다.
파업 기간 동안 진료를 미룬 사람들은 대부분 비응급 환자였다고 한다. 당장 죽지 않는다면 참을 수 있다는 판단. 하지만 만성 통증을 안고 사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가. 통증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보험금 지급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2025년 의료 파업 전후 월별 진료 건수를 보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파업 기간인 3~5월 진료 건수가 평년 대비 40% 감소했다가, 종료 직후인 6월에는 평년 대비 35% 증가했다.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숫자들이 정말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바로는 의료 시스템의 위기를 단순히 의사 수나 병상 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경계한다. 진짜 문제는 의료가 상품이 되고,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되는 구조 자체에 있다고 본다. 파업은 이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일 뿐이다.
보험회사들이 파업 종료 후 보험금 지급 증가를 '기저효과'라고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마치 자연현상처럼 말하지만, 사실 이는 제도의 실패가 만든 인공적 현상이다. 환자들이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폭력을 통계 용어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병원 문턱에서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진료비가 부담스러워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혹은 다음 파업이 두려워서.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장하고 있는가. 건강권은 누구의 것인가.
의료 파업이 끝났다. 병원은 다시 문을 열었고, 환자들은 돌아왔다. 하지만 정말 끝난 것은 무엇이고, 여전히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다음에 병원을 찾을 때,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히 의사와 환자의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과 질병, 삶과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