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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3째주] 부동산과 기대

침체 속에서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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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락 1929
대폭락 1929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대폭락 1929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 1954

부산역 광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년 남성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부동산 앱을 켜고 북항 일대 매물을 확인한다. 옆에서 대화가 들린다. "북극항로 얘기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더라." 택시 기사도 한마디 거든다. "요즘 서울에서 내려와서 땅 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부산 부동산 시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이 도시에 북극항로 개척, 해운사 본사 이전 같은 소식들이 흘러나오면서 투자 검토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조심스럽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정책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대폭락 1929』에서 투기 거품의 형성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 부동산 투기를 다룬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이애미에서 시작된 투기 열풍은 곧 주변 도시로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실제 가치보다 미래의 기대에 돈을 걸었다.

갤브레이스가 주목한 것은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어떻게 합리적인 개인들이 집단적 광기에 빠지는가. 그는 이렇게 썼다. 투기는 항상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믿음으로 포장된다. 철도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다. 북극항로는 어떨까.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노후 보장의 수단이다. 청년들은 영끌로 아파트에 올라타려 하고, 은퇴자들은 전세 보증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이 구조 속에서 부동산 가격의 등락은 곧 삶의 부침이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52.3%에서 2025년 58.7%까지 올랐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둔화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 돈을 묶어둔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여전히 부동산을 믿어서일까.

갤브레이스는 1929년 대공황 직전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거품인 줄 알았지만 자신만은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부산의 투자자들은 다를까.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과연 다른 결말을 쓸 수 있을까.

부산역 광장의 남성이 택시에 올라탄다. "북항 쪽으로 가주세요." 창밖으로 재개발을 기다리는 오래된 건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기대와 현실 사이, 그 간극을 메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늘도 이어진다.

한국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
출처: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