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 물류센터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분류 작업자가 바코드를 찍는다. 삐삐삐. 기계음이 어둠을 가른다. 그의 손목엔 보호대가 감겨 있다. 세 달째 교체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교체할 여유가 없어서다.
대형마트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려 한다. 쿠팡과의 공정경쟁을 위해서란다.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논의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새벽을 깨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조너선 크레리의 『24/7』은 잠들지 않는 자본주의를 해부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마저 정복하려 든다.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 그곳에서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크레리는 묻는다. 끊임없는 가동 상태가 과연 진보인가.
야간노동은 단순히 밤에 일하는 것이 아니다. 몸의 시계를 거스르는 일이다. 수면 호르몬이 분비되어야 할 시간에 각성을 유지해야 한다.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이 주간 노동자보다 23퍼센트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야간노동 인구는 꾸준히 늘어난다.
새벽배송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늘어난다. 물류센터, 분류장, 배송 트럭. 도시가 잠든 시간, 그들이 도시를 움직인다. 아침에 문 앞에 놓인 상자. 그 뒤엔 누군가의 밤잠이 있다.
크레리는 수면을 '자본주의가 식민화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라 불렀다. 잠든 인간은 생산하지도,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본은 잠을 줄이려 한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로, 스마트폰의 푸른 빛으로, 그리고 이제는 새벽배송이라는 편의로.
물론 소비자에겐 편리하다. 자기 전 주문하면 아침에 도착한다. 마법 같은 일이다. 하지만 마법은 없다. 누군가의 노동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 그들이 깨어있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진출을 두고 공정경쟁을 논한다. 시장점유율과 규제 형평성을 따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빠져있다. 우리는 정말 새벽 3시에도 물건을 받아야만 하는가. 그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밤을 빼앗는 것이 정당한가.
일본의 한 편의점이 심야영업을 중단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매출은 줄었지만 이직률도 줄었다. 지속가능한 선택이었다. 한국의 새벽배송 전쟁은 어떤 선택을 할까.
새벽 5시, 배송기사가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띠띠띡.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7층, 1402호.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는다. 사진을 찍는다. 배송완료. 그가 돌아서는 순간, 집 안에서 알람이 울린다.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의 밤은 언제 끝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