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년의 어느 날, 우리는 새벽배송이 없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공중전화를 떠올리듯, 약간의 향수와 함께 불편함을 상상하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까.
김동아 의원이 발의한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법안이 논란이다. 쿠팡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고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라고도 한다. 그런데 균형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똑같이 밤새 일하는 것이 과연 균형일까.
새벽 3시, 물류센터의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형광등 불빛 아래 상자들이 분류되고, 트럭에 실린다. 누군가의 아침 식탁에 올라갈 우유와 빵, 저녁 반찬거리들이 도시 곳곳으로 흩어진다. 편리함의 대가는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러진다.
조너선 크래리의 『24/7 잠들지 않는 사회』는 우리가 도달한 이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자본주의가 시간의 마지막 경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지고, 쉼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진다. 새벽배송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속도를 상징한다.
크래리는 수면을 '자본주의가 식민화할 수 없는 마지막 자연'이라고 표현한다. 잠자는 시간은 생산도, 소비도 하지 않는 시간. 그래서 자본은 끊임없이 이 시간을 침범하려 한다. 새벽배송 기사의 알람이 울리는 시각, 물류센터 야간 근무자가 출근하는 시각, 그리고 우리가 주문 버튼을 누르는 시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통계는 이런 변화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야간 근로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138만 명에서 2023년 171만 명으로 늘어났다. 5년 사이 약 24퍼센트 증가한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물류와 배송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우리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밤잠이 있다.
법안을 둘러싼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공정경쟁에 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숨어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많이. 이런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크래리는 묻는다. 인간이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리듬에 맞춰 작동하는 사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삶의 리듬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우리는 이 시기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속도와 편리함에 모든 것을 양보한 시대, 혹은 마침내 다른 가치를 선택하기 시작한 시대로. 그 선택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주문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