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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1째주] 안전의 가격

산업 현장의 AI 도입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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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공터에서
김훈
공터에서김훈 · 2017

2025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874명. 전년보다 12명이 줄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 숫자를 보며 누군가는 안도할지 모른다. 하지만 874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 평균 2.4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텔리빅스라는 AI 기업이 코스닥 상장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산업 현장 안전 관리를 위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다. 카메라와 센서가 위험을 감지하고, 알고리즘이 사고를 예측한다. 기술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 그런데 정말 그럴까?

김훈의 『공터에서』를 다시 펼쳤다. 2017년에 나온 이 소설은 타워크레인 기사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지상 40미터 높이의 조종실에서 하루 열 시간을 보내는 남자. 그는 매일 아침 사다리를 오르며 생각한다. 오늘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안전은 돈이 된다고. 사고가 나면 공사가 중단되고, 보상금을 내야 하고, 이미지가 나빠진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안전에 투자한다. 헬멧을 나눠주고, 안전교육을 시키고, 표어를 내건다. 하지만 타워크레인 기사인 그는 안다. 진짜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피로. 그것이 가장 큰 적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현장으로 향하는 몸. 좁은 조종실에서 반복되는 동작. 집중력이 흐려지는 오후 3시. 바로 그 순간 사고가 일어난다. AI가 이런 피로를 측정할 수 있을까? 알고리즘이 인간의 고단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통계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최근 5년간 산업재해 사망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62퍼센트에서 2025년 71퍼센트로. 젊은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을 피하면서 나이 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AI가 감시하는 것은 이들의 안전일까, 아니면 생산성일까?

김훈의 소설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높은 곳이 무서워진다.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사다리를 오른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까.

AI 기술이 산업 현장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센서가 위험을 감지하고, 카메라가 감시하고, 데이터가 패턴을 찾아낸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874명의 목숨값을 단순히 기술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충분한 휴식 시간? 적정한 인력? 나이 든 노동자를 위한 배려? 아니면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874라는 숫자로 돌아가 보자. 이 숫자가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 기업의 상장 소식을 들으며, 기술이 아닌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령대별 산업재해 사망자 비율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