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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3째주] 디지털 전환 속 노동자의 자리

AI가 사업 체질을 바꾼다는 기업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협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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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기계들
부서진 기계들
케빈 비니올로
부서진 기계들케빈 비니올로 · 2024

임정배 대상 대표이사가 주주총회장 단상에 올랐다. AI 전환과 바이오 강화. 짧은 발표였다. 주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가 터졌다. 그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회의록에는 '만장일치 가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그가 말한 '사업 체질 개선'에는 몇 명의 일자리가 들어있을까. AI가 대체할 업무는 무엇이고, 새로 만들어질 자리는 어디일까. 주주총회 자료 어디에도 그 숫자는 없었다. 있을 리도 없다. 그것은 경영진이 답할 질문이 아니니까.

러다이트 운동은 1811년 영국 노팅엄에서 시작됐다. 방직공들이 기계를 부쉈다. 역사책은 그들을 '기술 진보에 저항한 어리석은 사람들'로 기록한다. 정말 그럴까. 케빈 비니올로는 『부서진 기계들』에서 다르게 본다. 그들이 부순 것은 기계가 아니라 협상 없는 전환이었다고.

당시 방직공들은 먼저 협상을 요구했다. 새 기계 도입 속도를 조절하자고. 전직 교육을 하자고. 최저임금을 보장하자고. 공장주들은 답하지 않았다. 그때 망치가 들렸다. 비니올로는 쓴다. 파괴는 대화가 막혔을 때 남은 유일한 언어였다고.

한국의 제조업 고용은 2018년 451만 명에서 2025년 419만 명으로 줄었다. 7년 동안 32만 명이 사라졌다. 같은 기간 IT 서비스업 고용은 89만 명에서 127만 명으로 늘었다. 38만 명이 생겼다. 숫자로만 보면 균형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나간 사람과 IT업으로 들어간 사람이 같은 사람일까.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이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와 직접 교섭해야 하는가. 디지털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이 그 전환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가. 법안 이름이 무엇이든, 조항이 어떻게 바뀌든, 핵심은 하나다. 변화의 테이블에 누가 앉을 자격이 있는가.

비니올로는 러다이트들의 편지를 인용한다. 우리는 기계를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를 굶주리게 하는 사용법을 미워할 뿐이다. 2백 년이 지났다. 기계는 AI로 바뀌었다. 하지만 질문은 그대로다.

임 대표가 주주총회장을 나섰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펼쳤다. 차에 올라타며 휴대폰을 봤다. AI 비서가 오늘의 일정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만든 성우는 이미 일자리를 잃었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하지만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은 정치적이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배제되는가.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 러다이트들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무엇을 협상할 수 있는가. 아니, 협상 테이블에 앉을 자격이라도 있는가.

한국 제조업 고용인원 변화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