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한 해 동안 원청 기업을 상대로 한 노동자들의 직접 교섭 시도가 312건에 달했다. 전년 대비 47% 증가한 수치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예견된 변화였을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시작된 구조의 필연적 귀결이었을까.
대상그룹이 주주총회에서 AI 전환을 선언했다.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이라는 화두는 이미 식상하다. 그런데 이 전환의 이면에는 또 다른 변화가 숨어 있다. 생산 현장의 노동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 AI가 관리하는 스마트 팩토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알고리즘이 배치하는 노동에서 원청과 하청의 경계는 과연 존재할까.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중세 길드의 도제 시스템을 상세히 분석한다. 도제는 장인의 작업장에서 기술을 익히며 천천히 숙련을 쌓았다. 그 과정은 단순한 기능 습득이 아니었다. 작업의 의미를 체득하고, 재료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며, 자신만의 솜씨를 만들어가는 긴 여정이었다. 세넷이 주목한 것은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별한 관계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책임과 신뢰, 그리고 상호 의존.
현대의 하청 구조는 어떤가. 원청은 비용과 위험을 외주화하고, 하청은 끊임없이 단가를 맞춰야 한다. 이 관계에서 기술의 전수나 숙련의 축적은 사치다. 계약서에 명시된 납품 일정과 품질 기준만이 중요할 뿐. 세넷이 말한 '좋은 일(good work)'의 조건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시간이다. 숙련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 실패를 반복하고, 개선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 하지만 분기별 실적에 쫓기는 기업들에게 이런 시간은 낭비로 보일 뿐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다. 계약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장기적 숙련을 꿈꾸기는 어렵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원청과 하청의 관계를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원청.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면서도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하청. 이 구조적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PEF 업계까지 노란봉투법을 경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투자한 기업의 하청 노동자들이 펀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자본의 흐름이 복잡해질수록 책임의 소재는 더욱 모호해진다. 누가 진짜 사용자인가. 이 질문 앞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난다.
세넷은 장인정신의 쇠퇴가 단순히 낭만적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이 일을 통해 성장하고 의미를 찾는 가능성의 상실이다. 하청 구조 속에서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원청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임금 인상이나 고용 안정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노동이 전체 생산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AI가 생산을 관리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런 문제들은 해결될까. 아니면 더욱 복잡해질까. 알고리즘은 공정할지 모르지만, 그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리고 그 설계 과정에서 원청과 하청의 권력 관계는 코드 속에 은밀히 스며들 것이다.
312건. 처음에 던진 이 숫자로 다시 돌아온다. 원청을 상대로 한 직접 교섭 시도의 증가는 단순한 법 개정의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내 노동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일하고 싶은가. 이 근본적인 물음들 앞에서 원청과 하청이라는 낡은 구분선은 이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