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매일 출퇴근하는 길목에도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모델하우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세금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당신은 이 풍경을 보며 무엇을 떠올리는가. 내 집 마련의 기회일까, 아니면 또 다른 거품의 시작일까.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발표되었다.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 익숙한 처방전이다. 건설사들은 '정중동'의 자세를 취하며 요충지 수주 경쟁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책의 세부 내용이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은 움직이면서도 멈춰 있다.
2005년, 일본의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는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에서 묻는다. 집은 누구를 위해 지어지는가. 그는 도쿄의 작은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깨달았다고 썼다. 설계도면 위의 집과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투자자가 보는 집과 거주자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국의 아파트 분양 시장은 특이하다. 집을 짓기도 전에 팔고, 사는 사람은 완성된 집을 본 적도 없다. 모델하우스라는 환상의 공간에서 미래를 상상할 뿐이다. 니시자와는 이런 현상을 '건축의 소외'라고 불렀다. 사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집 자체가 모두 따로 논다.
당신도 모델하우스에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대리석과 최신 가전제품, 넓어 보이는 거실. 하지만 실제로 입주하면 어떤가. 창밖으로는 또 다른 아파트만 보이고, 주차는 늘 전쟁이다. 정책이 말하는 '공급'과 우리가 원하는 '집'은 왜 이렇게 다를까.
통계를 보면 더 흥미롭다. 한국의 1인당 주거면적은 꾸준히 늘어왔다. 하지만 청년층의 주거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넓어진 것은 평균일 뿐, 실제 삶의 공간은 더 좁아졌다는 의미다. 부동산은 숫자가 되고, 집은 투자 상품이 되었다. 그 사이에서 삶은 어디로 갔을까.anson 정부의 정책 발표를 보며 건설사들이 신중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공급량이 아니라는 것을. 니시자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건축'이 아니라 '더 나은 거주'다.
당신이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인가.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아파트인가, 아니면 저녁 햇살이 거실로 들어오는 공간인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전자만 생각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하지만 진짜 집은 후자에 있지 않을까. 부동산 정책의 성공은 가격 안정화가 아니라, 우리가 집을 투자가 아닌 삶의 공간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날에 측정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