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한 명이 있다. 그는 경찰이 교통사고로 처리한 좌파 의원의 죽음을 수사한다. 증거는 하나씩 드러난다. 목격자, 의사, 신문 기자, 내부 고발자. 그러나 진상에 가까워질수록 검사의 주변이 좁아진다. 상관은 압박하고, 언론은 따돌리고, 체제는 결론을 미리 정해둔다. 1969년 코스타-가브라스의 『Z』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가장 강렬한 정치영화의 하나로 만들었다.
영화는 1963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살해된 좌파 정치인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공식 발표는 '교통사고'였으나, 실제로는 우파 민병대가 정부·경찰의 묵인 속에 자행한 정치 암살이었다. 3년 후 예심판사 크리스토스 사르치타키스의 집요한 수사로 실체가 드러났고, 이 사건은 그리스가 1967년 군사 쿠데타로 넘어가는 전야에 벌어진 상징적 사건이 됐다.
『Z』는 엔딩에서 극장 관객을 배반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힌 검사는 1967년 쿠데타 이후 기소되고, 주요 증인들은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고문받는다. 영화는 나레이션으로 담담히 '그 후'를 전한다. 정의는 잠시 승리했으나, 곧 군홧발에 짓밟혔다. 영화의 제목 Z는 그리스어 "Zei(그는 살아 있다)"의 머리글자다. 살해당한 자가 역사 속에 살아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정치적 저항의 언어로만 가능하다는 냉소이기도 하다.
2026년 4월 한국의 상황은 영화와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는 유사하다. 2025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헌정 위기 이후, 2026년 초 '내란특검법'이 제정됐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경위, 군·경 동원의 법적 근거, 국회 봉쇄 지시 여부 등이 수사 대상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4월 중순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특검법 헌법소원을 정식 심판에 회부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법적 장치가, 그 자체로 헌법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Z』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지만 집요하다. "진상 규명은 언제나 법적 절차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정치가 되는가?" 영화 속 검사는 법적 증거로 실체를 밝히지만, 그 실체는 곧 정치 세력 간 권력의 문제로 변환된다. 2026년 한국의 특검법 헌법소원도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를 수사할 수 있는지, 수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는 형식적으로 법적 판단이지만, 실질적으로 정치적 지형을 반영한다.
그러나 『Z』를 단순히 '진실이 권력에 패배한다'는 냉소의 영화로만 읽으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영화의 나레이터가 마지막에 읊는 목록에서, 우리는 국민에게 금지된 것들의 길이에 놀란다. 긴 머리, 미니스커트, 소포클레스, 톨스토이, 에우리피데스, 자유 언론, 사회학, 베케트, 도스토옙스키, 그리스 음악, 수학, 비틀즈, 심지어 "Z"라는 글자 자체. 군사정권이 두려워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였고, 정치 암살의 밑바닥에는 문화 말살의 논리가 있었다.
2026년 한국 맥락에서 주목할 대목이 여기에 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좁은 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합의해 왔는지에 대한 지형이다. 계엄령의 정당성,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과 한계, 입법부의 견제 도구인 특검법의 경계 — 이 모든 것이 『Z』가 보여준 "금지된 목록"의 한국판 리트머스 시험지다.
코스타-가브라스는 영화를 만든 직후 프랑스로 망명했다. 『Z』는 프랑스·알제리 합작으로 제작됐고, 그리스에서는 군사정권 종식 후에야 상영이 허용됐다.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정치 영화는 결론을 짓지 않는다. 관객에게 질문만 남긴다"고 말했다. 그 질문은 2026년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법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 법을 심판하는 또 다른 법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정치와 법은 분리되는가, 아니면 계속 서로를 소환하는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2026년 하반기 혹은 2027년 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한국은 『Z』의 관객처럼, 법정에서 드러나는 실체와 그것을 둘러싼 힘의 지형을 동시에 지켜보게 될 것이다. 영화가 끝나도 질문은 남는다. 그게 정치영화의 운명이고, 아마 헌법 심판의 운명이기도 하다.
『Z』는 법적 절차로 시작한 진상 규명이 어떻게 정치적 지형의 산물로 번역되는지를 보여주며, 내란특검의 한국적 경로와 구조적으로 겹친다.
헌재의 특검법 헌법소원 회부는 형식적으로는 법률 심사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분립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영화의 마지막 목록처럼, 한 체제가 두려워하는 것의 리스트는 그 체제의 정체를 드러낸다. 2026년 한국에서 그 리스트를 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