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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을 보다 4월 다섯째 주] 1968년 다게넘에서 2026년 달력으로, 노동을 새기는 방식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4월 다섯째 주] 1968년 다게넘에서 2026년 달력으로, 노동을 새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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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국무회의는 4월 28일 노동절과 제헌절을 관공서 공휴일에 포함하는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고, 인사혁신처는 4월 29일 보도자료로 적용 방식을 알렸다. 같은 주에 다시 펴 들 자료는 1968년 영국 포드 다게넘 공장에서 시작한 187명 여성 재봉 노동자 파업이다. 나이절 콜의 「Made in Dagenham」은 그 파업이 1970년 영국 동일임금법으로 옮겨간 길을 그린다. 영화는 휴일 확대 자체를 묻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를 국가 달력 위에 어떤 글자로 새기는지를 묻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임금협상장이 아니라 공장 안이다. 1968년 6월, 영국 에식스 다게넘에 있는 포드 자동차 공장. 카메라는 시트 재봉실 천장의 환풍기 날개 사이로 떨어지는 한 줄 빛에서 시작한다. 187명의 여성 재봉 노동자가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시계를 보지만 받는 임금은 옆자리 남성 비숙련 노동자보다 낮다. 회사 분류표상 그들의 일은 ‘unskilled’로 적혀 있다. 시트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패턴 인식, 정렬, 결박, 마감의 손기술이 그 한 단어 아래 묻혀 있다.

주인공 리타는 그 분류표가 자기 일을 한 단계 아래로 적어 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망설인다. 옆자리 친구가 묻는다. 우리 일이 정말 그렇게 낮은 단계니. 망설임은 곧 결심이 된다. 187명은 미싱 앞에서 일어선다. 처음 외친 구호는 “파업”이 아니라 “재분류”다. 같은 손기술에 같은 등급을 매겨 달라는 요구. 그 요구가 1970년 영국 동일임금법(Equal Pay Act 1970)으로 옮겨 간 길이 영화의 본문이다.

나이절 콜은 이 흐름을 영웅 서사로 끌고 가지 않는다. 카메라는 가족 밥상, 경리부 책상 위 임금대장, 노조 본부 회의실, 야간 잔업 후 버스 정류장을 차례로 지난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가족 안 노동도 같이 보인다. 리타의 남편은 처음에는 “하루 정도면 봐 주겠지”라며 응원하지만, 한 주가 넘어가자 “집안일은 누가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다른 톤으로 돌아온다. 차별이 임금표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정 안 시간표 위에도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굳이 외치지 않고 보여준다.

「Made in Dagenham」이 2026년 4월 한국에서 다시 펴 들 만한 까닭은 1968년 다게넘과 2026년 서울이 같은 질문을 다른 표 위에서 마주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는 4월 28일 노동절(5월 1일)과 제헌절(7월 17일)을 관공서 공휴일에 포함하는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인사혁신처는 4월 29일 보도자료에서 적용 일정과 대체공휴일 처리를 안내했다. 그동안 5월 1일 노동절은 민간 근로자에게는 유급휴일이었으나 공무원과 교사에게는 관공서 공휴일 규정 밖에 있어 정상 근무일이었다. 같은 사회 안 두 시계가 같은 하루를 다르게 적어 둔 상태가 오래 이어졌다.

이번 의결은 그 두 시계를 한 칸 맞추는 작업이다. 그러나 영화가 비추는 자리는 시계의 위치가 아니라 시계 위 글자다. 노동절을 공휴일로 올리는 결정은 하루를 쉬게 하는 행정이지만, 동시에 ‘이 사회가 노동을 무엇으로 기억하기로 했는가’를 달력 위에 인쇄하는 일이다. 「Made in Dagenham」의 마지막 30분이 보여주는 것도 같은 풍경이다. 187명의 파업은 결국 ‘동일임금’을 법령 본문의 첫 줄에 인쇄하게 만든 사건이며, 인쇄된 한 줄은 그다음 20년 동안 영국 노동시장의 기준선을 새로 그었다.

달력의 제도화는 화려하지 않다. 한국의 노동절 논의는 길게는 1923년 조선노동연맹의 첫 노동절 기념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근로자의 날’로 바뀌어 3월 10일에 자리를 잡았다가, 1994년 다시 5월 1일로 옮긴 뒤에도 공무원·교사는 그 날을 비껴갔다. 같은 사회 안에서 ‘노동을 기념한다’는 문장이 누구의 달력에는 굵게, 누구의 달력에는 가늘게 적혔다. 이번 의결은 그 글자 굵기를 한 단계 맞춰 적는다.

영화의 시선을 한국으로 끌어오면 다음 질문이 또렷해진다. 첫째, 노동절을 공휴일로 올린 뒤 다음 글자는 무엇인가. 「Made in Dagenham」 이후 영국이 적은 다음 글자는 동일임금법, 성차별금지법(Sex Discrimination Act 1975), 평등법(Equality Act 2010)이다. 둘째, 제헌절을 같이 올린 의미는 무엇인가. 제헌절은 1948년 헌법 제정을 기념하며 헌법 제32조는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적는다. 두 날을 한 묶음으로 올린 결정은 “노동은 헌법의 본문”이라는 한 줄을 달력 위에 새기는 일에 가깝다. 셋째, 그 한 줄은 어떤 가구의 일주일을 어떻게 바꾸는가. 공무원·교사 가정의 5월 1일은 학교가 쉬는지,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외주 청소노동자의 그날 임금이 어떻게 정산되는지, 같은 사업장 안 비정규 직원이 그날 출근하는지를 새로 정렬한다.

「Made in Dagenham」은 영웅을 만든 영화가 아니라 행정 안에 글자를 새기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동일임금법 시행 이후에도 임금 격차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다고 적는다. 노동절을 공휴일로 올린 결정 다음에 한국이 적어 갈 글자도 그와 다르지 않다. 단체협약 조항, 임금명세서 표 양식, 휴일근로 가산 기준, 공공·민간 사이 휴일 정합성. 달력 위 한 줄이 그 뒤의 표 한 줄, 또 한 줄을 끌고 간다. 1968년 다게넘 미싱 앞에서 시작한 한 걸음이 1970년 법령 첫 줄로 옮겨 간 길도 그렇게 한 줄씩 적힌 길이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노동권은 공장 안 요구에서 사회 전체의 달력으로 이동한다

1968년 다게넘에서 시작한 ‘재분류’ 구호는 1970년 법령 본문 첫 줄로 옮겼다. 4월 28일 한국의 의결도 그 길의 한 칸을 차지한다.

2
차별은 임금표와 휴일표처럼 조용한 표 안에 숨어 있다

‘unskilled’ 한 단어가 187명의 손기술을 한 단계 깎았듯, 한국의 노동절 휴일 비대칭도 한 줄의 표 위에서 길게 살아남았다.

3
기념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장치다

달력 위에 ‘노동절’과 ‘제헌절’이 같은 굵기로 적힐 때, 그 글자는 다음 표 한 줄, 또 한 줄을 끌고 간다.

영화 「Made in Dagenham」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다시 공장 환풍기 아래로 돌아간다. 187명은 다시 미싱 앞에 앉지만 같은 자리가 아니다. 한 줄의 분류표가 바뀌어 있고, 한 줄의 법령이 새로 적혀 있다. 4월 28일 국무회의가 의결한 두 날의 위치도 같은 풍경에 가깝다. 휴일이 하루 늘어난 일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본문에 적기로 했는지를 다시 정한 일이다.

공식 예고편

Made in Dagenham (2010) — 나이절 콜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