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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돌봄을 목록으로 바꾸지만, 몸은 새벽 세 시에 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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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돌봄에는 관공서의 서류가 닿지 못하는 시간대가 있습니다. 열이 오른 아이가 뒤척이고 노모가 방문을 열고 나온 발소리에 잠이 달아나는,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는 그 어름입니다.

정부가 지난 1일 정책브리핑에서 올해 하반기에 달라지는 제도들을 한자리에 모아 알렸습니다. 육아휴직의 문턱을 낮추고 부모를 돕고 돌봄의 빈 곳을 메우겠다는 항목들이 시행일과 함께 줄지어 놓였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적지 않았습니다. 목록을 읽어 내려가다 문득 한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2020년 봄날의책에서 나온 에세이입니다. 부제는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이고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 기획했습니다. 네 명의 저자는 여성학과 의료인류학을 오가며 아픔과 돌봄의 정치를 물어 온 연구활동가들입니다.

이들의 글이 다른 자리에 서는 까닭은 이론에서 출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질병과 입원, 갱년기, 떨어진 면역력 — 저자들은 저마다 손상 입고 아프고 나이 드는 몸을 직접 통과하며 '몸의 언어'를 배웠다고 적습니다. 돌봄을 관찰하는 자리가 아니라 돌보고 돌봄받는 몸 안에서 문장이 태어났습니다.

책의 한 대목은 치매를 이렇게 고쳐 읽습니다. 치매가 사람의 속성을 하루아침에 앗아 가지는 않으며 그 몸은 손상된 뇌를 담는 그릇이 아닙니다. 그러니 치매를 준비한다는 말은 불운에 대비하자는 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삶을 상상하자는 말이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조용히 권합니다.

이 문장들을 손에 쥔 채 하반기 제도 목록으로 돌아와 봅니다. 8월 20일부터는 단기 육아휴직이 생겨 자녀가 아파 입원하거나 학교가 문을 닫을 때 한두 주 단위로 휴가를 낼 수 있게 됩니다. 9월 18일부터는 배우자가 임신 중이고 유산·조산의 위험이 있으면 출산 전에도 육아휴직을 쓸 길이 열립니다. 배우자 출산전후휴가는 출산예정일 50일 전부터 당겨 쓸 수 있도록 넓어집니다.

돌봄의 다른 자리도 채워집니다. 10월 29일 시작되는 양육비 선지급제는 비양육 부모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가족에게 소득이나 재산을 따지지 않고 자녀 한 명당 매달 20만 원을 열여덟 살까지 나라가 먼저 지급합니다. 11월 27일부터는 우선지원대상기업 노동자의 난임치료휴가 급여 상한이 16만여 원에서 33만여 원으로 오릅니다. 부모교육은 이달부터 전국 가족센터로 넓어집니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에게는 자기돌봄비의 길이 마련됩니다.

찬찬히 보면 목록은 정직합니다. 돌봄을 '휴직'과 '수당'과 '급여'라는 말로 번역해 예산과 시행일이라는 손잡이를 달아 두었습니다. 그 번역이 있어야 제도는 비로소 움직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로 가 닿습니다. 이 점을 낮잡을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번역에는 늘 남는 말이 있습니다. 휴직은 며칠, 수당은 얼마라는 단위로 셈해지지만 저 새벽 세 시의 돌봄은 단위로 끊기지 않습니다. 열이 내렸는지 이마를 짚느라 몇 번을 깨었는지, 같은 물음을 세 번째 받아 넘길 때 목소리를 어떻게 고르는지 — 그 시간은 신청서의 어느 칸에도 적히지 않습니다.

책이 '몸의 언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돌봄은 끝나는 날짜가 정해진 일이 아니라 아픈 몸과 나이 든 몸의 리듬에 제 몸을 맞추어 가는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 제도가 그 리듬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제도가 감당하는 몫은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지 않고 빚에 몰리지 않도록 곁을 받쳐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번역은 돌봄의 방향도 지워 버리기 쉽습니다. 수당은 돌보는 사람에게서 돌봄받는 사람에게로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저자들이 몸으로 겪은 돌봄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두 방향의 일이었습니다. 돌보는 사람이 오히려 돌봄받는 사람에게 기대게 되는 밤, 아픈 몸이 곁의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순간을 이 책은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반기의 목록은 끝이 아니라 문턱으로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임신 중에도 휴직을 쓰고 아이가 아픈 주에 곁을 지키고 양육비 걱정에서 한 걸음 놓여난 사람이 돌아갈 곳은 여전히 그 새벽입니다. 제도가 넓어질수록 목록 바깥에 남아 셈해지지 않는 돌봄의 시간도 함께 환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는 밤은 오늘도 누군가의 방에 찾아옵니다. 그 방의 불빛은 어떤 브리핑에도 실리지 않지만 우리 곁의 몸들은 거기서 서로를 돌보며 하루를 넘기고 있습니다. 목록을 갱신하는 손과 그 밤을 지키는 손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만큼 우리는 돌봄을 조금 더 아는 사회로 걸어가고 있을 테지요.

이 기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정부가 지난 1일 알린 하반기 제도 변화는 돌봄을 시행일이 붙은 항목들로 정돈해 놓았습니다.

2

그러나 목록이 아무리 촘촘해져도, 새벽 세 시에 아이의 이마를 짚고 노모의 발소리에 깨어나는 돌봄의 시간은 어느 칸에도 적히지 않습니다.

3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바로 그 셈해지지 않는 몸의 시간에서 질병과 노년을 다시 읽어, 제도의 목록과 돌봄의 실제 사이에 벌어진 틈을 비춥니다.

이 기사의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