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한 장이 고원을 살릴 수 있을까요? HS효성그룹이 2024년 7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주요 종속회사와 자회사의 ESG 활동을 통합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놓았고 한국앤컴퍼니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한온시스템을 묶은 첫 통합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첫 발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뉴스에 올랐죠.
여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습니다. 정부 최종안에 따르면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지속가능성을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담는 법정공시로 의무 공개해야 합니다. 종속회사를 포함한 의무 기업 수는 2028년 291개사로 출발해 2029년에는 자산 기준이 5조원으로 낮아지며 3,171개사로 늘어납니다.
그 보고서들이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단단할까요? 베네딕트 에를링손과 올라뷔르 에길 에길손이 함께 각본을 쓴 2018년 아이슬란드·프랑스·우크라이나 합작 영화 「우먼 앳 워」는 그 물음과 정반대편에서 시작합니다. 문서가 아니라 몸으로 자연을 지키려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할라는 합창단 지휘자이자 환경 활동가입니다. 아이슬란드 고원을 지키려 지역 알루미늄 산업에 '1인 전쟁'을 벌이는 그녀의 방식은 서류 한 장이 아니거든요. 두 각본가는 2018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SACD상을 받았고 이 작품은 같은 해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LUX 영화상도 품에 안았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오면 의무공시 체계에는 속도 조절 장치가 있습니다.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량인 Scope 3 공시는 기업별 최초 의무공시 시점부터 3년간 유예됩니다. 공시 정보의 독립적 제3자 인증은 2030년부터 의무화할 방침입니다.
정책의 시간표와 할라의 시간표는 전혀 다릅니다. 3년의 유예, 2030년의 인증 의무화 —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미래는 고원을 달리는 할라에게 너무 멉니다. 하지만 두 시간표가 향하는 목적지는 같습니다.
아이슬란드 영화·TV 아카데미는 「우먼 앳 워」를 제91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 아이슬란드 출품작으로 낙점했습니다. 유럽과 북미 관객이 이 영화에 공명한 것은 할라의 이야기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법정공시가 의미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의무공시는 첫해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담겨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정부는 이를 위한 법 개정을 2026년 안에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 무게가 실제 기업 행동을 바꿀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할라 역시 알루미늄 산업이 지역 경제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다음 날도 고원으로 나갑니다.
보고서와 행동 사이에 어떤 다리가 놓여야 할지 이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우먼 앳 워」는 시스템을 향해 혼자 달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카메라를 겨눕니다. 수치 공시가 의무화되는 2028년의 한국 기업들도 결국 그 카메라 앞에 서게 됩니다.
고원 위를 달리는 할라의 뒷모습이 처음 그 물음을 고스란히 돌려줍니다 — 보고서 한 장이 고원을 살릴 수 있을까요?
2028년 291개사, 2029년 3,171개사가 지속가능성을 법정공시로 공개해야 하며 정부는 2026년 안에 법 개정을 추진합니다.
「우먼 앳 워」의 할라는 알루미늄 산업에 몸으로 맞서며 보고서 대신 직접행동을 선택합니다. 제도의 속도와 현장의 긴급성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줍니다.
가치사슬 전반 배출량인 Scope 3 공시는 최초 의무공시부터 3년 유예되고 독립 인증은 2030년부터 의무화됩니다. 공개된 숫자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지가 이 제도의 시험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