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휘청이며 걷는 청년들
1. 달라진 청년의 표상
오랫동안 청년은 젊음과 열정과 도전의 상징이었다. 물론 불안과 방황 역시 청년을 수식하는 또 다른 말들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지만 젊음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변혁의 시기에 종종 청년이 호명되곤 했다. 근대 초기에는 기독교에서 청년을 호명했고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4.19, 5.18, 6.10 등 사회 변혁의 한복판에서 청년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
최근의 청년 담론은 MZ세대로 불리는 세대론에 갇히거나 '청년 정치' 라는 새로운 말의 조합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곤 한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흔히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유일한 세대로 불리는데, 성장이 멈춘 시대의 특징이 오늘날의 청년 담론에도 점차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의 곤혹스러운 결과를 마주하고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청년이 출현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새로움과 변혁과 열정이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수식어였던 시절을 지나 불안과 우울과 절망과 '하지 않음'이 청년을 대변하는 시절이 시작된 셈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돌파해야 할지 오늘의 기성세대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대안이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함을 절감할 뿐이다.
이 글은 오늘날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청년이라는 실체와 그들이 구성하는 담론을 해석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섣부른 진단을 시도하기에 앞서 시 작품에 나타난 청년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우회하고자 한다. 시가 여전히 오늘의 시대를 굴절된 방식으로나마 비춘다면 오늘의 시에 나타난 청년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오늘의 청년들과 진솔하게 마주하고 청년 담론의 돌파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청년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시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임화와 윤동주와 기형도.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이들을 청년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견은 많지 않을 듯하다. 청년 시기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 방황과 시대적 고뇌가 이들의 시에 대표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임화와 윤동주의 시에서는 식민지 청년으로 감내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과 번민이, 기형도의 시에서도 1980년대라는 엄혹한 시대를 시인이자 기자로서 살아가야 했던 청년 시인의 절망과 우울이 포착된다. 이들의 시가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게도 읽히고 그들 의 마음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15~29세 정도의 연령을 청년의 범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15~34세까지로 기준을 넓히기도 했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더 범위를 넓히기도 해서 정해진 특정한 언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연령 기준상 청년에 해당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청년의 특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서 사실상 연렁을 기준으로 청년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에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문학 에서 청년이라고 할 때는 연령 기준보다는 청년의 특징에 해당하는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시대에 따라 계속 기준이 변화해 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청년이라는 말의 함의는 불확정적이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2. 청년에서 배제된 청년의 목소리
우리 문학사에서 청년은 중요한 국면마다 호명되곤 했는데 대개 청년의 열정이 요구되는 변혁 시기의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새로움 기대와 젊음에 수반되는 열정이 청년이라는 표상을 통해 발현되기를 희망한 것이겠다. 시인 스스로 청년을 소환하기도 했고 사후적으로 청년 시인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 담론에서도 유독 주목받지 못했던 청년의 목소리가 있었다. 여성 청년의 목소리가 그것이었는데 청년이라는 보편성에 '여성' 청년의 목소리는 묻히거나 배제되곤 했다.
근대 초기에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신여성 시인들도 따지고 보면 새로 운 청년의 목소리를 담당한 셈이지만 이들은 사적인 스캔들로는 주목받았을지언정 시인으로서의 목소리나 이들이 냈던 발화의 내용은 진지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창조> 동인으로도 활동한 타실 김명순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는데 근대 초기의 시단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목소리를 내 왔지만 요란한 스캔들과 비난의 대상으로 호명됐을 뿐 청년으로서의 김명순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김명순은 급기야 ‘유언’이나 ‘저주’ 같은 시를 씀으로써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발화하는 여성 청년 시인으로서의 외로움을 드러낸다. 자신을 지독하게 학대한 "조선"을 향해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유언’)라고 절규함으로써 말이다.
1980년대 노동시가 한참 주목받던 시절 여성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낸 정명자와 최명자 시인이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노동자 시인의 목소리로도 청년의 목소리로도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970년대 노동 현실을 핍진하게 그린 정명자와 최명자는 1985년에 각각 <동지여 가슴 맞대고>, <우리들 소원>이라는 시집을 출간하며 동일방직노조 사건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거나 잊지 못할 1978년 2월 21일, 버스 안내원 노동자로서 체감하는 열악한 노동 현실과 감정 노동을 생생히 그려냈지만(‘코’) 이들의 목소리는 노동시가 가장 시단에서 주목받던 시절에도 제대로 들리지 못했다.
한국 현대 시사에서 독보적인 시인으로 자리 잡은 허수경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는 절절한 진주 방언, '주모적 여성성' 등으로 주목받았을 뿐 19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청년 시인으로서의 허수경의 목소리는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다. 경상대 국문과를 나온 허수경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대체로 그랬듯이 학생운동을 하며 기성세대와 갈등한 당시 청년 시인의 목소리를 첫 시집에서 드러냈고 '대학생' 여성 시인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표출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충분히 새로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런 관점에서는 전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허수경의 첫 시집 4부 에서 주로 그려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시인이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 와 갈등하는 상황은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허수경의 시는 1980년대 대학생 청년들이 겪은 세대 갈등과 시대적 요구 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었지만, 허수경의 목소리는 ‘토속성’으로 주목받거나 '모성'이나 '주모' 같은 수식어로 해석되곤 했다.
비슷한 시기에 첫 시집을 출간한 김경미 시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1989)는 당시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청년'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해석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더 감수성의 차이로 인한 것이기도 했겠으나 서성이고 방황하며 성장하는 청년들은 어쩌면 오랫동안 '청년'의 목소리 에서 배제돼 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시에서 청년을 호명할 때 기대하는 목소리가 당시에 있었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목소리는 '청년'의 목소리일지언정 청년의 것으로 호명되지 않았던 셈이다.
2000년대 이후 활발히 활동해 온 신해욱의 목소리는 어떠한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에 쉽사리 편입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겉돌며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신해욱의 목소리는 ‘비성년 주체’의 목소리로 종중 호명돼 왔지만 2000년대 이후를 살아가는 청년 주체를 대 변하는 목소리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른바 '아웃사이더' 청년의 목소리가 신해욱 식 상상의 옷을 입고 '비성년 주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다.
3. 비정규직 청년의 사랑과 슬픔
2010년대 이후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반향을 일으킨 경우로는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릴레이 대자보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는 우리 사회가 결코 안녕하지 못할 것임을 예견한 청년 주체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향해 집단 경고등을 켠 사건이기도 했다. 청년들를 향한 성찰의 목소리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이듬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나가는 슬픔의 동력이 됐다.
비록 지금 암담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의 살아 있는 목소리가 우리들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사회 변혁을 추동하는 일이 일어났었다. 그러면 이들은 모두 청년에서 이탈하거나 사라진 것일까? 청년의 목소리가 보수적이 됐다는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의 전부도 아니다. 자본의 힘이 더 거세지거나 실리 추구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비단 청년 세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책임은 권력을 지닌 기성세대에게 있음을 먼저 숙고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여전히 매주 수요일이면 수요 시위에 앞장서는 청년들이 있고 고소 고발을 당하면서도 감내하며 '소녀상 지킴이'를 자임하는 청년들도 있다. 미래의 청년들도 그 현장에는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의 이슈몰이에 선동돼 청년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그들을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청년을 이용한 지난 대선의 프레임 속에서 여전히 청년의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년들이 또다시 배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지만 역사를 움직여 온 작은 불씨는 사실상 소수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런 맥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90년대생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발화해 온 최지인 시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 지인은 첫 시집 <벽에 붙어 잤다>에서부터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일상에서 유발되는 슬픔과 유전되는 가난, 죽음 가까이 있는 삶에 대해 노래해 왔다. 올해 출간된 두 번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의 세계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좀 더 무르익은 목소리로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을 담담히 그려낸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었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들을 씻어 정리했다
-최지인, ‘기다리는 사람’(<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2022) 부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일은 청년 세대가 흔히 마주하는 현실이다. 공정이라는 가치를 배우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권리와 의무를 배운 오늘의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자유라도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 세대에게 허락되는 것은 "고작 설거지"를 미룰 자유 정도다.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 세대는 안다. 열심히 일하면 세상이 나아질 거리는 꿈을 더 이상 꿀 수 없다는 것을.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빈말이라도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가난한 청년들이 놓인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는 이들은 이미 늙어버린 몸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다.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리는 일밖에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기 힘들어진 청년들의 일상과 사유와 감정을 최지인의 시는 핍진하게 그린다.
대기 발령 중인 친구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물류센터에 나가 일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과거 열정과 도전의 상징이었던 청년이 이제는 불안, 우울, 절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세대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달라진 청년의 표상
오랫동안 청년은 젊음과 열정과 도전의 상징이었다. 물론 불안과 방황 역시 청년을 수식하는 또 다른 말들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지만 젊음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변혁의 시기에 종종 청년이 호명되곤 했다. 근대 초기에는 기독교에서 청년을 호명했고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4.19, 5.18, 6.10 등 사회 변혁의 한복판에서 청년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
최근의 청년 담론은 MZ세대로 불리는 세대론에 갇히거나 '청년 정치' 라는 새로운 말의 조합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곤 한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흔히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유일한 세대로 불리는데, 성장이 멈춘 시대의 특징이 오늘날의 청년 담론에도 점차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의 곤혹스러운 결과를 마주하고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청년이 출현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새로움과 변혁과 열정이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수식어였던 시절을 지나 불안과 우울과 절망과 '하지 않음'이 청년을 대변하는 시절이 시작된 셈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돌파해야 할지 오늘의 기성세대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대안이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함을 절감할 뿐이다.
이 글은 오늘날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청년이라는 실체와 그들이 구성하는 담론을 해석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섣부른 진단을 시도하기에 앞서 시 작품에 나타난 청년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우회하고자 한다. 시가 여전히 오늘의 시대를 굴절된 방식으로나마 비춘다면 오늘의 시에 나타난 청년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오늘의 청년들과 진솔하게 마주하고 청년 담론의 돌파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청년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시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임화와 윤동주와 기형도.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이들을 청년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견은 많지 않을 듯하다. 청년 시기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 방황과 시대적 고뇌가 이들의 시에 대표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임화와 윤동주의 시에서는 식민지 청년으로 감내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과 번민이, 기형도의 시에서도 1980년대라는 엄혹한 시대를 시인이자 기자로서 살아가야 했던 청년 시인의 절망과 우울이 포착된다. 이들의 시가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게도 읽히고 그들 의 마음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15~29세 정도의 연령을 청년의 범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15~34세까지로 기준을 넓히기도 했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더 범위를 넓히기도 해서 정해진 특정한 언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연령 기준상 청년에 해당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청년의 특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서 사실상 연렁을 기준으로 청년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에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문학 에서 청년이라고 할 때는 연령 기준보다는 청년의 특징에 해당하는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시대에 따라 계속 기준이 변화해 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청년이라는 말의 함의는 불확정적이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2. 청년에서 배제된 청년의 목소리
우리 문학사에서 청년은 중요한 국면마다 호명되곤 했는데 대개 청년의 열정이 요구되는 변혁 시기의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새로움 기대와 젊음에 수반되는 열정이 청년이라는 표상을 통해 발현되기를 희망한 것이겠다. 시인 스스로 청년을 소환하기도 했고 사후적으로 청년 시인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 담론에서도 유독 주목받지 못했던 청년의 목소리가 있었다. 여성 청년의 목소리가 그것이었는데 청년이라는 보편성에 '여성' 청년의 목소리는 묻히거나 배제되곤 했다.
근대 초기에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신여성 시인들도 따지고 보면 새로 운 청년의 목소리를 담당한 셈이지만 이들은 사적인 스캔들로는 주목받았을지언정 시인으로서의 목소리나 이들이 냈던 발화의 내용은 진지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창조> 동인으로도 활동한 타실 김명순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는데 근대 초기의 시단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목소리를 내 왔지만 요란한 스캔들과 비난의 대상으로 호명됐을 뿐 청년으로서의 김명순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김명순은 급기야 ‘유언’이나 ‘저주’ 같은 시를 씀으로써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발화하는 여성 청년 시인으로서의 외로움을 드러낸다. 자신을 지독하게 학대한 "조선"을 향해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유언’)라고 절규함으로써 말이다.
1980년대 노동시가 한참 주목받던 시절 여성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낸 정명자와 최명자 시인이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노동자 시인의 목소리로도 청년의 목소리로도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970년대 노동 현실을 핍진하게 그린 정명자와 최명자는 1985년에 각각 <동지여 가슴 맞대고>, <우리들 소원>이라는 시집을 출간하며 동일방직노조 사건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거나 잊지 못할 1978년 2월 21일, 버스 안내원 노동자로서 체감하는 열악한 노동 현실과 감정 노동을 생생히 그려냈지만(‘코’) 이들의 목소리는 노동시가 가장 시단에서 주목받던 시절에도 제대로 들리지 못했다.
한국 현대 시사에서 독보적인 시인으로 자리 잡은 허수경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는 절절한 진주 방언, '주모적 여성성' 등으로 주목받았을 뿐 19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청년 시인으로서의 허수경의 목소리는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다. 경상대 국문과를 나온 허수경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대체로 그랬듯이 학생운동을 하며 기성세대와 갈등한 당시 청년 시인의 목소리를 첫 시집에서 드러냈고 '대학생' 여성 시인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표출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충분히 새로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런 관점에서는 전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허수경의 첫 시집 4부 에서 주로 그려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시인이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 와 갈등하는 상황은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허수경의 시는 1980년대 대학생 청년들이 겪은 세대 갈등과 시대적 요구 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었지만, 허수경의 목소리는 ‘토속성’으로 주목받거나 '모성'이나 '주모' 같은 수식어로 해석되곤 했다.
비슷한 시기에 첫 시집을 출간한 김경미 시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1989)는 당시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청년'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해석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더 감수성의 차이로 인한 것이기도 했겠으나 서성이고 방황하며 성장하는 청년들은 어쩌면 오랫동안 '청년'의 목소리 에서 배제돼 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시에서 청년을 호명할 때 기대하는 목소리가 당시에 있었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목소리는 '청년'의 목소리일지언정 청년의 것으로 호명되지 않았던 셈이다.
2000년대 이후 활발히 활동해 온 신해욱의 목소리는 어떠한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에 쉽사리 편입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겉돌며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신해욱의 목소리는 ‘비성년 주체’의 목소리로 종중 호명돼 왔지만 2000년대 이후를 살아가는 청년 주체를 대 변하는 목소리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른바 '아웃사이더' 청년의 목소리가 신해욱 식 상상의 옷을 입고 '비성년 주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다.
3. 비정규직 청년의 사랑과 슬픔
2010년대 이후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반향을 일으킨 경우로는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릴레이 대자보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는 우리 사회가 결코 안녕하지 못할 것임을 예견한 청년 주체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향해 집단 경고등을 켠 사건이기도 했다. 청년들를 향한 성찰의 목소리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이듬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나가는 슬픔의 동력이 됐다.
비록 지금 암담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의 살아 있는 목소리가 우리들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사회 변혁을 추동하는 일이 일어났었다. 그러면 이들은 모두 청년에서 이탈하거나 사라진 것일까? 청년의 목소리가 보수적이 됐다는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의 전부도 아니다. 자본의 힘이 더 거세지거나 실리 추구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비단 청년 세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책임은 권력을 지닌 기성세대에게 있음을 먼저 숙고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여전히 매주 수요일이면 수요 시위에 앞장서는 청년들이 있고 고소 고발을 당하면서도 감내하며 '소녀상 지킴이'를 자임하는 청년들도 있다. 미래의 청년들도 그 현장에는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의 이슈몰이에 선동돼 청년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그들을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청년을 이용한 지난 대선의 프레임 속에서 여전히 청년의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년들이 또다시 배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지만 역사를 움직여 온 작은 불씨는 사실상 소수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런 맥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90년대생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발화해 온 최지인 시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 지인은 첫 시집 <벽에 붙어 잤다>에서부터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일상에서 유발되는 슬픔과 유전되는 가난, 죽음 가까이 있는 삶에 대해 노래해 왔다. 올해 출간된 두 번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의 세계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좀 더 무르익은 목소리로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을 담담히 그려낸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었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들을 씻어 정리했다
-최지인, ‘기다리는 사람’(<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2022) 부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일은 청년 세대가 흔히 마주하는 현실이다. 공정이라는 가치를 배우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권리와 의무를 배운 오늘의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자유라도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 세대에게 허락되는 것은 "고작 설거지"를 미룰 자유 정도다.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 세대는 안다. 열심히 일하면 세상이 나아질 거리는 꿈을 더 이상 꿀 수 없다는 것을.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빈말이라도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가난한 청년들이 놓인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는 이들은 이미 늙어버린 몸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다.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리는 일밖에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기 힘들어진 청년들의 일상과 사유와 감정을 최지인의 시는 핍진하게 그린다.
대기 발령 중인 친구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물류센터에 나가 일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과거 열정과 도전의 상징이었던 청년이 이제는 불안, 우울, 절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세대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 담론에서 여성 청년의 목소리가 배제돼 왔음을 지적하고, 김명순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묻혔는지를 보여준다.
시 작품에 나타난 청년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청년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