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해직의 사이클(cycle)과 연작소설(short story cycle)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영혼들의 이야기로 들끓었다. 부동산시세와 금리 지수를 밤하늘의 별 삼아 영혼까지 담보 잡은 모험담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대서사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거인이 한 걸음(giant step)을 떼자 별처럼 빛나던 각종 수치들은 도리어 영혼을 옭죄기 시작했다. 이 차트와 저 차트를 오가며 내 집 장만과 결혼과 재생산의 마스터 내러티브(master narrative)를 꿈꾸던 영혼들은 이제 결박된 제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착취해야 하는 덫에 빠져 있다. 차트 위에 오르내리는 그래프는 애초부터 가난한 영혼들을 위한 길잡이별이 아니었다. 차트를 자신의 인생 스토리로 끌어 오려 했던 영혼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차트는 다른 누구의 서사도 아닌, 그 자체로 갱신되는 자본의 자기서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즈음 코인 열차를 타고 <달까지 가자>(창비, 2021)라는 신화적 상상력도 횡행했던 듯하다. 그래프의 '떡상'과 '떡락' 구간에 무수한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한국문학 또한 그 이야기의 대열에 참가했는데, 비공채로 입사한 세 명의 '무난'들 암호 화폐를 통해 미래의 전망을 그는 소설이다. 이들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금언을 성실히 수행해, 인생 역전부터 소소한 반전까지 평범한 회사원으로서는 꿈꿀 수 없는 미래를 움켜쥐게 됐다. 그러나 이들이 연월도사의 점괘에 의지해 하락세 구간을 초현실적 능력으로 버텨내고 있을 때, '코인 게시판에는 무수한 영혼들이 깨어진 살림살이를 파국의 '인증샷으로 제출하며 암호화폐 시세 그래프 위의 하나의 점으로 소멸해갔다. 기실 <달까지 가자>가 출간되고 유통되던 시점에는 이미 암화폐의 성공신화도 시들해질 무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달달하게’ 읽힌 건 차트의 기승전결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모종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 보건대, <달까지 가자>는 인생 역전의 완결된 장편 소설이 아니라, 장대하게 지속되는 차트의 한 구간일 뿐이었다. 오늘도 차트는 끝나지 않는 지옥의 내러티브를 쓰고 있다.
내러티브 경제학은 사람들 사이에 바이러스처럼 확산된 이야기가 경제 사건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갭투자 성공기나 부자 아빠의 투자기 같은 경제 내러티브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확산되면서 경제 전반의 어떤 사건이나 흐름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경제적 사건으로부터 내러티브가 만들어진다는 통념을 뒤집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내러티브로 인해 경제적 사건이 촉발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의 전환은 임금률과 세율, 금리 등 경제 데이터에 반해 나타나는 이례적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사람들의 행동, 곧 개인의 내러티브로부터 거대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는 왠지 우리 각자의 삶이 경제 차트의 굴곡을 그려내는 무수한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고 돌려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대하장편 서사를 쓰고 있는 것은 차트이고, 우리의 삶은 그래프의 갱신을 위한 숙주가 아니냐는 의심이 생긴다. 과연 이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의 장편 서사라는 것은 가능한가
이기호의 <눈감지 마라>(마음산책, 2022)는 지방대를 졸업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는 박정용과 전진만의 이야기다. 두 청년은 그다지 얻은 것도 없이 대출금만 떠안은 채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이제 막 기숙사에서 나와 월세 삼십만 원의 반지하 원룸으로 옮긴 참이다. 이 소설은 삼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할애해 정용과 진만의 졸업 후 삼 년, 곧 이들이 스물여섯 살에서 스물아홉 살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한눈팔지 않고 두 청년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주변인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소설은 왜 '장편소설'이 아니라 마흔아홉 개의 '연작 짧은 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일차적으로 일간지에 연재한 소설이라는 태생적인 조건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는 그것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주제적 차원의 문제 또한 도사리고 있다. 왜 지방 청년 서사 혹은 비정규직 서사는 장편소설이 되지 못하는가.
이 기사는 비정규직 청년들 불안정한 삶을 이기호의 소설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이를 통해 현실의 삶이 수치로 표현되는 경제 지표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 기사는 개인의 내러티브가 경제 사건을 촉발한다는 '내러티브 경제학'의 관점을 소개하며, 차트와 내러티브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기사는 이기호의 소설 『눈감지 마라』가 왜 '장편소설'이 아닌 '연작 단편'의 형식을 취하는지 분석하며, 지방 청년 서사의 한계를 성찰한다.
이 기사는 비정규직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을 이기호의 소설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차트와 수치로만 표현되는 경제 현실 너머의 진짜 삶을 보여준다.
부동산과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투자 서사가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임을 폭로한다. 내러티브 경제학의 관점에서 개인과 차트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왜 비정규직 서사가 장편소설이 아닌 연작 단편의 형식을 취하는지 분석하며, 파편적 시간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삶을 형상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