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자극성을 넘어 다양성의 세계로, 한국 문화콘텐츠의 남은 과제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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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이후의 한국 문화콘텐츠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기 시작할 무렵 그래도 캠페인이 가능했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4개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비영어권 감독, 배우, 제작자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2022년 9월에 이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주로 영미권 드라마에 주어지는 에미상 프라임타임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기생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화제는 여러모로 백인 중심, 유럽이나 미국 중심이라는 기득권 중심 체제를 깨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다양한 문화권 언어권의 영화들을 지방영화(local movie)라 지칭하며 발견하고자 했고, 그 발견에 대한 주목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드라마는 좀 다르다. 드라마는 집, 거실, 안방에서 TV를 통해 콘텐츠 서사를 향유하는 매우 소극적 서사 소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영미문화권 사람들이 영어로 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걸 두고 자기 문화, 언어 중심적이라고 비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2021년 9월 소개되고 난 이후 전 세계 2억 명 가까운 인구가 시청을 했고, 이에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이 그토록 안타깝게 요구했던 1인치 자막의 장벽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환경과 OTT 플랫폼 서비스 확산을 통해 단숨에 실현되어 버린 것이다.

전통적 영상 서사 서비스 플랫폼인 케이블, 지상파 TV, 스크린 영화는 빠른 속도로 뉴미디어 영상서비스, OTT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코드 커팅(code cutting) 혹은 코드 셰이빙(code shaving)이라고 부른다. 코드 커팅은 유료가입 채널인 케이블 채널에서 무선 스트리밍 서비스인 OTT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유선 서비스를 자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코드 셰이빙은 매달 지불했던 유료 유선 채널의 수를 대폭 줄이는 현상을 지칭한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 수를 대폭 늘렸다고 한다. 이는 한편 전통적 플랫폼 채널에서의 이탈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22년 7월 시청률 조사 업체 닐슨의 설문 결과를 보자면, 미국에서는 온라인 스트리밍 시청률이 케이블 TV 시청률을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광고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플랫폼 대이동 현상으로 연쇄된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 대전환의 맨 앞에 우리 콘텐츠 <오징어 게임>이 있다.

닐슨 시청률 조사를 보자면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과 함께 우리는 뉴미디어, 소셜 미디어 그룹으로 분류한 유튜브가 스트리밍 서비스 즉 OTT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 시사 플랫폼으로 기형적 성장을 이뤘지만 세계적으로 유튜브는 서사 콘텐츠 제공 기업으로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점차 성장하고 있는 숏폼 드라마나 예능 콘텐츠 등이 유튜브에서 성장하고 있는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이제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단순히 우리 이야기, 서사의 세계적 인지도 향상이나 영향력 향상의 초보적 문제가 아닌 이 영향력 이후의 문제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까, 이 글은 영향력 그 이후의 징후와 문제들에 대한 예측이자 선제적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2. 다양성과 형평성 재점검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은 <코다>가 수상했다. 농인 가정의 청인 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코다>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딸이 노래를 부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원작인 <미라클 벨리에, 2014>를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제인 캠피온의 영화 <파워 오브도그>가 작품성의 측면에서 훨씬 더 강렬하다는 점에서 <코다> 수상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긴 하지만 소품임에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카데미에서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균형적 요소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아예 작품상 후보로 만나볼 수 없게 될 듯싶다. 작품상후보의 조건으로 다양성의 규정이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발표된 다양성기준은 영화 안과 밖 모두 적용된다. 우선 다양성은 배우, 영화 안에서의묘사, 주제와 관련되어 검증된다. 두 번째는 감독·작가. 촬영 감독 등과같이 스태프 구성과 연관된다. 여기엔 유급 인턴십 등 영화산업 진입 기회까지 포함된다. 마케팅이나 홍보 같은 작품 외부의 산업적 분야까지 확장되니, 한 작품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촬영되고, 배포, 홍보되는 전 과정에 참여하는 전반적 다양성을 살펴보겠다는 포부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배우 캐스팅일 수밖에 없다. 주연이나 조연처럼 대중에게 시각적 비중이 높은 경우엔 최소한 한 명 이상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라틴계,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메리칸 원주민 등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 출신이 있어야 한다. 최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백설공주>와 같은 영화에서 유색인종의 주인공 출연이 부쩍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주, 조연 배우의 인종만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촬영, 분장, 미술, 각본 등 다양한 스태프 분야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다양성 요소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껏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카데미는 너무 하얗다(Oscar So White)"라고 비난받아온 것에 대한 나름의 자구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백인 위주 오스카란 남성, 백인, 기득권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제작자 웨인스타인에 대한 미투 고발 사건 이후 점차 확산된 미국 영화 산업 내부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가 이러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내규로 구체화된 셈이다.

너무 하얗다, 라는 비판은 오스카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문화 산업의 주요 시상식 모두에 적용되어 온 바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이 수상한 에미상 역시 2020년엔 프라임 타임 주요 부문 연기상 수상자가 모두 백인으로 결론이 나자 큰 논란에 휩싸였다. 그래미상이 시청률 견인 유도 효과로 최근 BTS를 매년 초청하긴 했지만 정작 아무런 상을 주지 않았을 때 대중이 가했던 싸늘한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뮤지컬 시상식인 토니상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대상으로 하니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로컬 뮤지컬 시상식에 불과해졌다. 2021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미국의 독립영화사 A24가 제작한 <미나리>가 한국어 분량이 많고 한국 배우가 많다는 이유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을 때는 이건 뭐 거의 코미디라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비난과 비판이 활성화된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아카데미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문화 주체들은 다양성 확보의 방안을 여러 규약과 제약을 통해 성문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영화 드라마는 다양성과 관련된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보자면 아직 한참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유색인종, 한국어라는 점에서 비영어권이라는 일종의 면세 혜택을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성별 균형만 해도 그렇다. 아카데미의 기준을 한국 영화, 드라마에 적용하자면 여성의 참여 지수를 나타내는 한국 대중영화의 벡델지수는 한창 떨어진다. 2022년 화제작들만 살펴봐도 그렇다. <범죄도시2>, <한산>, <수리남> 등 한국의 블록버스터 대중 서사들은 대개 남성이 중심이다. 감독도 남성이며, 주인공도 남성이고, 주제, 서사, 스태프 역시 거의 다 남성이다. 이는 비단 2022년의 문제만이 아니다.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여성 중심의 영화는 흥행성이 떨어지니 뒤로 밀린다는 게 공공연하게 회자될 정도다.

올해 화제작을 <헤어질 결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은아씨들>로 확장하면 그나마 다양성이 확보된다.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요소들을 넣어 보면 다양성의 함수는 더 초라해진다. 직업적 다양성을 넣어보면 또 어떤가? <오징어 게임>이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받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칸의 주요 부문을 휩쓸 만큼 한국의 영화, 드라마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남은 숙제도 많다는 의미이다.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된 <수리남>과 <작은 아씨들> 소동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수리남>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허구다. 실존 인물 K가 실제 국가인 수리남에서 겪은 일을 토대로 하긴 했지만 드라마 <수리남>의 상당 부분은 허구이다. 홍어 수출도 그렇고 영화 속 차이나타운도 윤종빈 감독의 상상에서 출발했다. 시작은 실화였을지 몰라도 결과물은 허구다. 그러나 마약과 수리남은 그 연관성이 오히려 사실과 무관하지 않기에 급기야 외교적 마찰이 일 뻔했다.

<작은 아씨들>에 등장했던 베트남 파병 문제도 그렇다. 드라마 전체를 보고 나면 베트남 파병 자체에 대한 문제 의식을 읽을 수 있지만 대사 한 줄 한 줄만 보자면 베트남 시청자가 느낄 불편감을 부정하긴 힘들다. 허구적 거리만큼 떨어진 대한민국의 관객에게는 덤덤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일부로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결코 무감할 수 없는 장면과 대사들이었던 셈이다.

표현에 있어 자유는 늘 보장되어야 한다.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결코 침범받을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다. 그러나 표현이란 발화이기에 늘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 없는 대화는 무용한 혼잣말이며 잠꼬대에 불과하다. 대화는 청자가 있을 때 완성된다. 그렇다면 표현은 언제나 듣는 상대를 고려해야만 한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영화나 드라마, 문화콘텐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화적으로도 역시 청자 그러니까 시청자와 관객에 대한 이해 즉,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의 관객과 시청자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내수용일 때, 창작자들은 서사 소비자인 관객과 시청자의 반응을 매우 예민하게 예측하고 또 그에 반응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확산 가운데서 우리 드라마, 영화 서사는 세계의 다양한 요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급성장의 청신호 속에서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다양성, 올바름 표현 수위의 성숙도까지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3. 더빙과 문화 번역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외국 소비자들의 일차적 반응은 역동적이며 새롭고, 자극적이다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지옥>, <부산행>, <기생충>과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보자면 충분히 공감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폭력적인 부분도 꽤 많고, 짧은 런닝 타임 안에 사건이 급속도로 전개되며, 좀비조차도 서구의 전통적 좀비 모델과 달리 집단적으로 재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렇듯 장르성을 앞세운 자극적인 이야기 외에도 <갯마을 차차차>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잔잔한 드라마가 많은 해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대단한 성공을 누린 작품들에 비해 소소하게 비춰서 그렇지 이러한 작품들의 성과도 만만치 않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우리에게 잘 알려진 OTT 플랫폼을 통해 제작되거나 유통, 배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배급망인 넷플릭스가 제작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전송권을 얻어 세계 시장에 유통했다. 그러다보니, <우영우>는 더빙 없이 자막으로만 방송되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고 하지만 특히 영어권 관객, 시청자는 여전히 더빙을 선호한다. 여기엔 번역의 문제도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며 한국 드라마 번역 작업에 과거보다 훨씬 많은 번역 인력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그 질적 수준의 일관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형편이며 장면과 상황을 요약한 압축적 자막 제공의 숙련도가 떨어진다. 여기엔 자막 읽기에 익숙지 않은 영어권 사용자의 낯섦도 한계가 된다. 자막을 읽다보면 드라마의 몰입도나 이해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다.

이에 넷플릭스 측에 가입자들의 <우영우>의 영어 더빙 요구가 쇄도했고, 넷플릭스는 자체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라이센스 드라마에 이례적으로 더빙을 사후 제공했다. 그리고 우영우라는 인물의 특징을 고려해 실제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성우를 기용해 더빙과정을 완수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더빙에서의 번역 과정이었다. 우영우의 대표적인 대사 중 하나는 바로 길게 이어지는 자기소개다. "내이름은 우영우,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그리고 역삼역" 말이다.

우영우처럼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낱말이나 문장이 되는 경우를 회문, 팔린드롬(palindrome)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 문화에서야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가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똑같지만 영어 알파벳으로 단순 번역하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토마토tomato 스위스 swiss만 봐도 그렇다 발음이야 같지만 철자가 달라지니 우영우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멀어진다.

드라마 <우영우>에서 자신의 이름을 회문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너무도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결과 영어식 회문을 선택해, “Kayak, Deed, Rotator, Noon, Racecar, Woo Young-Woo, Civic"으로 번역했다. 영어로 단어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단순히 회문 자체보다는 문화적으로 비슷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들을 섬세하게 고르고 고르느라 애썼다고 한다. 바로 문화 번역이 실현된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와 같은 서사 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사랑받으면서 한국인의 일상적 맥락과 생활 방식 그리고 뉘앙스 자체가 고스란히 잘 전달되는 것, 말 그대로 품격있는 문화 번역이 요구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속의 서사란 곧 사람살이의 재현이고 거기엔 일상과 우리만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 일상은 일일이 단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서사적 맥락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번역되지 않는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일상 자체가 오히려 드라마, 영화를 이해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번역이란 단순히 출발어에서 도착어에 닿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해석 및 변환 과정에 멈추지 않는다. 만약, 우영우 변호사의 사무실이 역삼역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이 단어가 자기소개에 등장할 리 없다. 생활의 범위가 매우 좁은 자폐 스펙트럼 우영우에게 역삼역은 직장이자 매우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역삼역은 서울에서도 강남, 가장 부유한 동네이며, 법률사무소를 비롯한 주요 사무실들이 밀집한 도심 공간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법무법인 한바다는 한국에서 첫 번째, 두 번째를 다투는 법무법인으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강남, 역삼역에 사무실이 있다는 게 개연성을 갖는다. 이런 개연성은 사소한 듯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의 사실성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이런 문화 번역은 이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제목의 번역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한국어에서 '이상한'은 정상에서 벗어난 독특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어판에서 이 단어는 “Strange”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인기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영어 제목이 "Strange Things"인 것을 생각하면 우영우 변호사를 수식하기엔 차별적 요소가 들어가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영어권 버전에서 '이상한이 우리식으로는 "특별한"을 의미하는 "extraordinary”로 번역된 이유도 여기 있을 듯싶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그렇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이라는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이나 할 법한 유치하고 단순한 게임에 목숨을 거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하는 보편적 아이들 놀이도 있지만 한국식으로 "뽑기", "떼기”로 불리는 “설탕과자게임”의 경우 매우 한국적인 게임이라 이를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갔다. 제목에 쓰인 "오징어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의외로 <오징어 게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편의점과 초록병이다. 극 중 주인공인 성기훈은 편의점에 들러 소주병과 생라면을 사서 그 앞 파라솔 벤치에 앉아 먹는다. 편의점에서 병 술을 사서 먹는 장면은 사실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거의 반복적,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퇴근길에 맥주나 소주를 사서 과자나 라면으로 안주 삼아 한두 잔, 한두 캔을 비운다. 실제 그렇게 살아가든 그렇지 않든, 이런 장면은 한국인이라면 매우 일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외국의 시청취자들에겐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게다가 시간의 구애 없이 술을 사고팔 수 있는 것도 매우 독특한 문화로 보여질 게 뻔하다. 술을 사는 데 연령 제한뿐만 아니라 시간 제한이 있는 곳도 많으니 말이다. 심지어, 길거리 파라솔 벤치에서 술을 마시는 게 허락된 경우도 드물다.

<오징어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인 "쌍문동의 자랑, 쌍문동이 낳고 기른 수재,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 조상우”라는 대사의 의미도 한국인에게 전달되는 뉘앙스가 전 세계인들에게 고스란히 번역되진 않았을 듯싶다. 어머니가 전통시장에서 어렵게 돈을 벌고, 어려운 가운데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기 어려운 일류 대학에 간 인물이라는 느낌은 조상우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2021년 전통시장의 맥락, 한국에서 갖는 좋은 대학 입학의 기대감, 강남, 강북 극단적으로 나뉜 부동산 시장 등등 서울이 가진 복잡다단함이 조상우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짧은 문장 안에 다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뉘앙스가 전부 번역될 수는 없다.

이런 장면은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도 등장한다. <지옥>의 정진수(유아인)는 엄청난 신도를 거느린 종교적 지도자로 등장한다. 그를 향한 절대적인 지원, 후원금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름한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그가 형사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와 마침내 허름한 고시원을 가리키며 저기가 내 집이라며 걸어 들어갈 때, 한국의 시청자가 느끼는 반전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정진수가 사는 “고시원”은 대한민국의 최저 비용으로 가능한 최저 수준의 주거 형태를 의미한다. 원래는 고등공무원이 되기 위한 고시를 보기 위해 기거하는 독서실이었으나 결국 가장 작고 좁고, 싼 거주지로 변질된 주거 형태가 바로 고시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저 “there" 정도로 번역이 될 뿐, 그 뉘앙스를 전달해 주지 못한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가 상징이었던 것처럼 사이비 교주 정진수가 하필 “은혜고시원에 산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문화권에 따라 고시원이 학생기숙사로 번역되기도 했다. 애초에야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더 이상 학생들이 살지 않는다. 최소 수준으로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해 최저 수준의 수도권 노동자들이 살아갈 뿐. 고시원은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환경이나 복지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고도로 발전된 대한민국 모순의 한 장면이다.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학생들이 서로를 1등 혹은 반장이라고 호명하는 것도 평범한 일이다. 심지어 같은 반 급우를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부유층 자녀도 있다. 한국의 고등학교 학급 생활은 갑자기 등장한 좀비로부터 도망다니며 생존하는 것만큼이나 경쟁적이다. 좀비가 된 친구들보다 오히려 좀비가 덜된 친구가 더 무서운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가진 재미, 로움, 힘은 바로 한국이 가진 사회적 모순을 이야기에 담는 그 용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아프고, 문제가 있을수록, 한국은 그 문제를 이야기로 만들어,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자 하니 말이다. 결국, 이 삶의 모순을 고스란히 번역하는 일, 수준 높은 문화 번역을 통해 우리 콘텐츠의 다양성은 훨씬 더 깊은 이해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선 공감에 닿게 될 것이다.

 

4. 소비자들과의 균형, 예상해야 할 윤리적 문제

한국 문화콘텐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만큼 이젠 고민하고 돌아보고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아졌다. 새로운 K-pop 그룹 뉴스의 노래 <쿠키>가 만났던 예상치 못했던 논란도 그렇다. 우리 언어, 한국어의 문맥에서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쿠키'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는 성적 함의를 가진 상징어로 쓰인다는 비판이 소비자들에게서 쏟아졌다. 뉴진스 멤버 전원이 10대 소녀이기에 문제는 더 커졌다. 이를테면 K-pop 산업이 순진무구한 10대 소녀들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남용한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 사태로 커진 것이다. 만약 뉴스가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10대 걸그룹이었다면 가사로 인해 이런 문제까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발매와 동시에 전 세계 팬덤이 소비하는 지금의 한국문화콘텐츠시장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팬들의 반응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음악 BTS를 비롯한 한국의 대중음악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성적으로 선정적인 가사가 넘쳐나는 영미권 팝음악과 차별화되어 10대의 철학적 현재를 고민하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BTS 음악은 미국 대중음악에 조응할 수 없던 10대의 감수성을 간파하고, 팬덤과 함께 성장하며 자기 반성과 자기 내면의 성장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일종의 교양적 측면에서의 깊이감이 한국 문화콘텐츠 발전의 밑바탕이 된 셈이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자극성이 단순히 감각적인 데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순적 정치, 사회적 상황의 각성 효과를 위한 자극이라는 알리바이는 거듭 검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다양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넓은 의미의 시대적 윤리의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유정,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려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 모두 마치고 문학박사가 되었다.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과 영화평론으로 등단해 신춘문예 3관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J>,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 EBS <시네마천국> 등에 오랫동안 출연했고 진행도 했다. 경향신문에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출연자로 간혹 얼굴을 내민다. 지은 책으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죽음은 예술이 된다>, <타인을 앓다>, <스무 살 영화관>,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noxkang@hanmail.net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