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8주 뒤 치료비 틀어쥔 ‘부정수급 대책’…보험사 곳간 채우고 국민 건보에 폭탄 던지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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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월 26일 발표한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과 6월 20일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비 지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고삐를 죄고 있다. 경상환자(상해 12‒14등급)가 사고 후 8주를 넘겨 추가 치료를 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진단서와 경과기록을 가해자 측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고, 보험사가 자체 심사로 지급보증 연장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핵심이다. 국토교통부는 “과잉·장기 치료로 새는 보험료를 막아 3%가량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의료계·소비자단체·건보 재정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환자 치료권 제한과 공적 재정 누수라는 이중 참사가 예고된다”고 경고한다.

 

지난 7월 10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열린 대한한의사협회의 궐기대회는 이런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상징적 장면이었다. 삭발까지 감행한 의료인들은 “국민건강권을 보험사 이익과 맞바꾸는 졸속 행정”이라며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시위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시행 뒤 벌어질 현장의 변동이다. 의료인뿐 아니라 환자, 보험설계사, 손해사정인, 건강보험재정 전문가까지 이해당사자가 쏟아내는 우려를 하나씩 풀어 보면 이번 개정안이 던질 파장은 의외로 넓고 깊다.

먼저 환자 측 피해 가능성이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45) 씨는 지난해 경미한 추돌 사고 후 여섯 달 넘게 목·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김씨는 “처음 두 달은 통원치료가 잘 진행됐지만 지금도 날씨가 흐리면 담이 온몸을 조인다”며 “만약 8주가 지나 보험사가 ‘더는 못 내준다’고 하면 결국 진료비를 스스로 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직후 급성 통증이 잦아드는 8주 이후부터는 만성화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게 현장의 통설인데, 이번 개정안은 바로 그 시점을 기준으로 치료비 지급을 끊겠다는 셈이다. 장기 통증은 치료를 미뤄 둘수록 만성 통증으로 굳어질 확률이 커 진단·물리·약물치료를 지속해야 하는데, 보험사가 비용 부담을 덜겠다는 명분 아래 환자를 건강보험이나 자부담으로 떠미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다음은 국민건강보험 재정 불안 요소다. 현재 자동차보험은 민영보험이지만 치료비를 ‘1차 지급자’로 부담해 건강보험 재정을 예방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8주 이후 치료비가 대거 건강보험으로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보건경제학계는 2023년 기준 자동차보험 진료비 중 경상환자 장기 치료분을 약 1조 4천억 원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절반만 건보로 전가돼도 건보 지출이 7천억 원 이상 늘어난다. 이는 2024년 건강보험 누적 적자(약 3조 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보험료 3% 인하 효과”와 “건보 적자 확대”라는 저울추에 어느 쪽 무게가 더 큰지는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도 전에 감이 온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경상환자의 과도한 물리치료·약침·도수치료가 보험료 상승의 주범”이라고 반박하지만, 정작 업계 내부에서도 이번 대책이 ‘성급하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손해사정사 A씨는 “8주 차에 제출된 서류만 보고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결국 지급거절→분쟁→소송 루트가 급증해 행정비용도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보험사들이 새로 설치되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위원회 분쟁조정 절차를 밟다가 패소하면 오히려 손해액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은 상해 등급별 치료 권고 기간이 존재하지만, 연장 여부를 보험사가 단독 심사하지 않는다. 주치의 소견서와 지역 의료심사위원회, 혹은 공공보험 심사기구가 함께 판단한다. 미국 일부 주는 보험사 사무국이 직접 거절권을 갖지만, 거절 뒤에는 주(州) 소속 상해평가위원회나 제3자 손해사정인이 강제 중재를 맡아 환자와 보험사 양쪽의 이견을 조정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처럼 가해자 측 민간보험사가 1차·2차 판단권을 모두 쥔 구조는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가 근거로 제시하는 ‘보험료 3% 인하’ 추계도 불투명하다. 추정치는 보험개발원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로 공개된 산식이 없다. 더구나 자동차보험 사기 적발 통계(연 5,476억 원)에도 운전대리, 정비소 허위청구 같은 비(非)진료 영역이 대거 포함돼 있어, 경상환자 장기 치료만으로 사기액을 설명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결국 “나이롱환자 잡아 보험료 내리겠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제도 전반을 합리화하는 ‘만능 열쇠’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선 의료기관은 복합진료 공백도 우려한다. 지방 중소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B원장은 “8주 이후 치료가 끊어지면 초음파·MRI 재평가도 못 하는데, 상태 확인 없이 물리치료만 중단된다면 후유장애 진단서가 급증할 것”이라며 “보험료는 일시적으로 내릴지 몰라도 향후 손해배상액이 늘어나면 결국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가 재상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보험사 자율 심사’가 실제로는 중장기 비용 절감에 얼마나 기여할지 미지수라는 뜻이다.

법조계에서도 ‘소송 폭증’ 신호탄을 본다. 환자 측 변호인들이 치료비 지급중단 통지 이후 위자료·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늘려 보험사의 법무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중립성을 확보한다”고 설명했지만, 조정 신청권조차 환자가 아니라 보험사가 우선 갖는 구조여서 ‘중립성’ 논란은 앞으로도 불씨가 될 전망이다.

 

결국 핵심은 보험사·정부·의료계·소비자단체·건보공단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일이다. 보험사기 대응이 절실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적 재정과 환자 권리를 희생시켜 민간보험 수지를 맞추겠다는 발상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해외가 채택한 다자 심사·공적 중재 모델, 경상환자 단계별 치료 프로토콜·재활 가이드라인 확립, 가해·피해 측 보험사 공동 부담 방식 등 다양한 제도적 대안이 이미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보험사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면 공개된 데이터·검증 가능한 산식으로 목표치를 제시하고, ‘8주 모자르면 건보로 떠넘긴다’는 식의 손쉬운 해법을 포기해야 한다”고 입 모은다.

입법예고 의견수렴이 마감되는 7월 30일은 ‘스타트라인’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의료계·소비자단체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 테이블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건보공단이 한 테이블에 앉아 공공보험·민간보험·환자 권리의 균형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부정수급 개선’이란 이름 아래 피해자 치료권과 건보 재정이 돌이키기 어려운 균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개정안이 환자와 국민, 그리고 보험시장 전체의 ‘폭탄 돌리기’가 될지, 합리적 재정 개선의 첫 단추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8주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비용과 고통이 누구의 어깨 위에 놓일지는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