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 기억의 정치가 만든 두 개의 상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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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기억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얼핏 별개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이 두 상처는 국제 정치의 기억 투쟁 속에서 깊이 얽혀 있다. 유럽인들은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일”로 새기며 그 기억을 신성시해 왔다. 그러나 그 기억의 정치가 20세기 중동에서 또 다른 민족의 고통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평론가들은 “홀로코스트 기억은 더 이상 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 박탈과 박해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유대 민족의 집단트라우마인 홀로코스트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서방의 담론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나크바(1948년 대참사) 기억을 주변화하고, 이들의 현재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은 서로 다른 시대에 벌어진 두 비극임에도, 한쪽의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이 다른 쪽 상처를 가려버리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 제기: 기억의 정치와 두 개의 상처
홀로코스트 이후 서방 사회는 유대인들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동정과 지지를 보냈고, 이는 이스라엘 건국과 안보 정책에 막대한 정당성 자원으로 작용했다. 유럽 각국, 특히 독일은 역사적 속죄심으로 이스라엘을 적극 두둔하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비판적 개입을 꺼렸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국제 무대에서 주변화되어 왔다. 알리 아부니마 등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은 서방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제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본래 취지와 달리 “유럽 선조들의 죄악 대가를 팔레스타인인이 땅과 목숨으로 치르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팔레스타인 편들기를 반유대주의로 몰아 엄격히 제재하고, 팔레스타인 나크바의 기억을 공론장에서 지우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난다. 홀로코스트라는 특별한 기억이 정치화되면서, 정작 오늘날 진행형인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에는 눈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러한 “기억의 정치”가 빚어낸 모순에 주목한다. 그는 “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기억하는 길과 팔레스타인 권리를 세우는 길은 결코 만나지 못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이 “다시는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없게 하라”는 인류 보편의 다짐이라면, 그 다짐이 마땅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과 국가적 권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흘러, 홀로코스트의 도덕적 자본이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정당화하거나 묵인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적인 비극이 자리한다. 한쪽의 기억을 지키려는 선의가 다른 쪽의 비극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딜레마인 셈이다.
원인 분석: 영국의 상충된 약속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구조적 모순
팔레스타인 분쟁의 뿌리에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이 남긴 모순된 약속들이 놓여 있다. 영국은 전쟁 중 전후 중동 패권을 염두에 두고 서로 충돌하는 세 가지 약속을 동시에 내걸었다. 첫째, 맥마흔-후세인 서한(1915~16)에서는 오스만 제국에 맞선 아랍인의 봉기를 대가로 전쟁 후 아랍 독립국가(팔레스타인 포함)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둘째, 그와 병행해 프랑스와 맺은 비밀협정인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에서는 오스만령 아랍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 갖기로 밀약했다. 셋째, 밸푸어 선언(1917)을 통해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영국은 승전을 위해 동맹국 프랑스, 아랍 민족주의 세력, 세계 유대인 사회 각각에 달콤한 약속을 던진 셈인데, 문제는 이 약속들끼리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었다. 한 땅을 세 번 중복으로 약속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이중 플레이는 훗날 치명적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자 아랍인들은 독립 약속 이행을, 유대인들은 민족 고국 건설 약속 이행을 각기 요구하며 팔레스타인 땅을 둘러싼 대립이 표면화됐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지(聖地)를 사이에 둔 유대인 이민과 토착 아랍인 간의 긴장이 격화되어, 영국 위임통치 기간(1920~1948) 내내 유혈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유엔에 떠넘기고 철수해 버렸다. 영국이 남긴 것은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었다. 역사학자 제프리 삭스는 “영국의 완전히 모순된 약속들이 한 세기 넘게 지속된 끝없는 분쟁의 불씨가 됐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적 책략으로 한 땅을 세 번 팔아넘긴 결과, 팔레스타인은 오늘날까지도 해결 불가능한 영토 분쟁의 무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문제의 구조적 모순은 애초에 국제적 합의의 부재와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 잉태됐다. 1947년 유엔은 이 땅을 유대국과 아랍국으로 분할 결의(UN결의 181호) 했지만, 이미 영국의 이율배반으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아랍은 이를 거부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첫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그 과정에서 7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는 대재앙(Nakba)을 겪었다. 냉전 초기 강대국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영토를 확대했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발생했으나, 이를 공정하게 중재해야 할 국제사회는 영국의 과거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채 사태를 악화시켰다. 팔레스타인 땅은 영국의 모순된 약속으로 시작해 유엔의 미흡한 개입으로 이어지며, 민족 자결과 이주민 국가 건설이라는 두 원칙이 충돌하는 역사적 딜레마의 장으로 굳어졌다.


현황 진단: 1967년 이후 점령과 국제법 위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스라엘이 단숨에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요르단령), 가자지구(이집트령), 골란고원(시리아령) 등 영토를 점령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군사 점령 하의 분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국제사회는 곧바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2호(1967)는 분쟁 당사국들에게 “분쟁을 통한 영토 취득은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이스라엘군의 점령지 철수를 촉구했다. 이어 결의 338호(1973)도 242호의 “모든 조항을 이행”할 것을 당부하며,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국제법상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의 합병 금지, 점령지 민족의 자기결정권 보장 등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나아가 네번째 제네바협약 등 조약에도 점령지에 자국민을 이주시켜 영구 영토 편입을 시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사실상 병합(1980년)하고, 서안지구에 수백 개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현상 변경을 지속해 왔다. 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영유권 주장을 “원천 무효”로 선언한 바 있고(결의 478호, 1980), 정착촌 정책에 대해서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결의를 수차례 채택했다. 그러나 구속력 있는 안보리 결의마저 미국의 거부권 행사 등으로 이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장기화한 점령에 대해 국제법적 우려도 갈수록 높아졌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04년 자문 판결에서 “이스라엘의 월경장벽 건설과 정착촌 정책은 국제법에 어긋나며, 관련 국가들은 이러한 불법 상태를 승인하거나 지원해선 안 된다”고 천명했다. 최근인 2024년 7월에는 ICJ가 한층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점령지에 대한 지속적 군사점령은 자체로 불법”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세기를 넘긴 팔레스타인 점령이 더 이상 합법적 통치로 간주될 수 없다는 법적 판단이다. 요컨대 유엔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서 현행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 상태이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미흡한 사이 팔레스타인 땅은 계속 잘려나가고 있다. 2023년 가자지구에서 촉발된 유혈 충돌과 인도적 위기는 이러한 미해결 분쟁의 심화된 결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국제법의 권위와 국제 정의의 보편성이 시험대에 오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70만 명+
나크바 난민 수
기사 본문
1920~1948년
영국 위임통치 기간
기사 본문
결의 181호 (1947)
유엔 분할 결의 번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안 제시: 국제사회 책임과 한국 외교의 역할
팔레스타인 분쟁의 장기화 배후에는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선택적 개입이 자리한다. 유엔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와 이스라엘의 불법행위를 수없이 규탄해왔지만, 강대국들의 정치적 이해 탓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이유로 안보리의 거의 모든 대(對)이스라엘 결의안을 번번이 거부권으로 무력화했다. 그 결과 유엔 헌장이 부여한 국제 평화 수호 의무가 이중 잣대 속에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2023년 말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에 대한 미국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제 인권단체들은 일제히 미국의 태도를 규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미국의 행보를 “뻔뻔하게 안보리를 협박해 그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라 비난했고, 국경없는의사회는 “미국이 외교적 방패막이를 제공한 덕분에 국제인도법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일부 민족의 삶은 덜 중요시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선 국제법 수호를 외치던 서방이 유독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침묵하거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선택적 정의는 중동 지역 민심의 불신을 부르고, 더 큰 극단주의와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외교에 주어진 과제도 분명해진다. 중동 분쟁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5천여 곳이 진출해 있고 원유·가스 등 에너지 안보가 직결된 지역인 만큼, 한반도의 평화만큼이나 중동의 안정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한국은 그간 중동 현안을 두고 미·중 등 강대국 눈치를 살피며 소극적 입장을 취해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희수 교수는 이제 한국이 “방관자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전략적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그는 감정에 치우친 편들기보다는 “냉정한 지성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펼칠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한미동맹의 틀을 유지하되 우리 국익에 맞는 독자적 중동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기조를 맹목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이란과도 학술·문화 교류를 꾸준히 해 두어 외교 채널을 확보하라는 제언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제재하는 건 미국 입장일 뿐 국제적 합의가 아니다”라며 한국이 보다 주체적인 중동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파이낸셜뉴스가 2024년 8월 마련한 중동전쟁 위기 특별대담에서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오른쪽)가 노동일 주필과 대담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이 중동 분쟁에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접근해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한국 외교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국가 이익을 조화시키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우리가 취할 입장은 인도주의와 국제법 존중이라는 원칙 아래 실용 외교를 병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와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열망을 모두 인정하면서,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에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중동에서 특정 적대국이 없는 드문 나라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중립적 입지를 살려 한국은 때로는 조용한 중재자로서, 때로는 국제무대에서 원칙 있는 발언국으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중동 분쟁 관련 인도적 지원 확대나 평화 프로세스 마련을 위한 다자 협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제적 위상도 높이고 실질적인 국익도 지킬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우리에게 중동은 에너지·물류 생존 파트너”라며 국익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나아가 한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일관된 원칙과 능동적 역할을 보인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외교 자산은 더욱 값지게 평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키는 길과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세우는 길은 과연 만나지 못하는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기억하자는 그 숭고한 외침이 또 다른 민족의 비극 앞에서는 왜 힘을 잃어야 하는가. 이제는 이 질문에 국제사회가 정면으로 답할 때다. 기억의 정치가 만든 두 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홀로코스트의 교훈과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권리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인류에게 주어진 어려운 숙제이지만, 반드시 풀어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이스라엘 / 유대인 사회팔레스타인인서방 국가 (영국·독일·유럽)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을 정당화하거나 묵인하는 논리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영국의 모순된 세 가지 약속에서 비롯된 팔레스타인 분쟁을 국제사회는 과연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