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출판공로상 받은 제국의 위안부…출협, 거버넌스 위기 자초하나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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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와 출판사 대표에게 ‘한국출판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하면서 출판계가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출협은 “11년간의 법정 투쟁으로 학문과 출판의 자유를 지켜낸 공로”를 선정 이유로 들었으나, 학계와 시민사회는 물론 출판계 내부에서조차 “피해자들의 상처를 외면한 부적절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며 논란은 출협의 거버넌스 위기로 번지는 모양새다.

■ “표현의 자유 수호” vs “왜곡된 저작에 상이라니”

논란의 발단은 출협이 제39회 ‘책의 날’ 기념 한국출판공로상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정종주 뿌리와이파리 대표를 선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출협은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이 책이 던진 쟁점을 공론장에 다시 올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저작에 공로상을 수여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행위”라며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온라인과 언론에서도 “학문적 타당성도 부족한 책에 공로상이라니”, “표현의 자유가 역사 왜곡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2013년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등으로 서술해 출간 직후부터 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결국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10년이 넘는 기나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2024년 대법원 파기환송심 끝에 형사소송은 박 교수의 무죄로 종결됐으나, 재판부가 ‘표현의 자유’의 손을 들어줬을 뿐 저서의 역사적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 회장-수상자 ‘학연’… ‘이해충돌’ 의혹과 리더십 위기

11년
법정 투쟁 기간
대한출판문화협회
2013년
도서 출간 연도
기사 본문
제39회
책의 날 회차
대한출판문화협회

이번 수상 결정 과정을 두고 출협 내부의 공정성 문제도 제기된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출판사 ‘사회평론’의 대표를 겸하고 있는데, 박유하 교수는 과거 사회평론에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수상자인 정종주 대표 역시 사회평론 편집주간 출신으로, 윤 회장과의 오랜 인연이 이번 수상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포상 논란을 넘어 출협의 리더십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 ‘도서전 사유화’ 논란 재점화…신뢰 잃은 출협

출협의 거버넌스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을 별도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유화’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출협 집행부는 법인 자본금의 상당 지분을 윤철호 회장이 소유한 사회평론 등 일부 주체에 집중시켜 “공적 행사를 사유화하고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작가회의 등 출판·문화 단체들은 “충분한 공론화 없이 소수 경영진의 판단만으로 공공재 성격의 도서전을 주식회사로 만들었다”며 지분 구조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이번 공로상 파문은 출협이 사회적 정당성과 공공의 신뢰를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출판계 인사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옹호하는 것과 역사적 상흔을 헤집는 저작에 ‘공로’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도서전 사유화 논란에 이어 이번 사태까지, 출협이 출판계 전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는커녕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윤철호 출협 회장위안부 피해자 및 정의기억연대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출판·학문의 자유 수호라는 명분이 역사적 피해자의 존엄과 충돌할 때, 공적 기관은 어떤 기준으로 공로를 판단해야 하는가?
수상자와의 학연·직연 의혹, 도서전 사유화 논란으로 이어지는 거버넌스 위기 속에서 출협은 출판계 공적 대표 기관으로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