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안정과 성장 동력을 공급해온 역할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2025년 1~3분기 중국의 APEC 회원국 교역액은 19조4100억위안으로 전체의 57.8%를 차지해 전년 대비 2% 증가했다. RCEP·CPTPP·DEPA 참여 확대, 녹색·디지털 협력 등으로 중국은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도 개방적 지역 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제32차 APEC 정상회의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다. 세계 경제의 중추로 떠오른 아시아태평양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성장세 때문이 아니다. 지정학적 긴장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안정의 추’를 유지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공급해왔는지가 이번 회의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四中全会)를 마친 지 불과 며칠 만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국을 국빈 방문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는 중국이 내세우는 ‘공동 발전’ 비전을 외교무대에서 실천으로 이어가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아시아태평양은 상호 신뢰와 개방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며 협력 중심의 지역경제 질서를 강조해 왔다.
페루의 찬카이항은 이러한 중국식 개방 전략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신(新) 잉카의 길’로 불리는 이 항만 프로젝트는 남미 최초의 스마트·친환경 항만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직접 잇는 교역 루트를 열었다. 시 주석은 2024년 APEC 회의 당시 화상으로 개항 장면을 지켜보며 “무역·투자·기술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는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조 아래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의 고도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및 DEPA(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 등 개방형 경제협력에 적극적이다. 실제로 2025년 1~3분기 중국의 APEC 회원국들과의 교역은 전년 대비 2% 증가한 19조4100억위안(약 2조7300억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중국 전체 교역의 57.8%를 차지했다. 섬유,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 전 산업에 걸친 교역 확대는 역내 상생 구조의 확산을 보여준다.
이제 중국은 단순한 ‘제조·무역의 중심’에서 ‘기술혁신의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23년 APEC CE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은 “디지털과 녹색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기술혁명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열린 제22회 중국-아세안 엑스포에서는 신에너지·AI·첨단소재 분야의 공동 R&D 프로젝트 62건이 체결됐다. 이는 단순한 교역을 넘어 기술공유 중심의 협력모델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칠레 산티아고의 팬아메리칸 게임에서 운행된 중국산 2층 전기버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대회 운영을 지원한 이 차량은 ‘녹색 전환의 실물 사례’로 평가받으며, 중국이 수출하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기술과 지속가능성의 가치임을 보여줬다. 필리핀 마닐라의 아시안 센추리 필리핀 전략연구소(Asian Century Philippines Strategic Studies Institute)는 “중국의 기술혁신이 공급망 재편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며, 역내 국가들에게 실제 산업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의 포용적 성장 모델은 개발도상국 중심의 실질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고로카에 설립된 준차오(Juncao) 및 고지대 벼 재배 시범센터는 중국이 지원한 농업협력 프로젝트로, 지역 식량안보와 자립형 생계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빈곤감축형 협력’이라는 중국식 개발 접근법의 현장 버전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APEC 내에서 중소기업 클러스터 육성, 가계소득 증대, 기술 인력 교류 등 다층적 이니셔티브를 운영 중이다. 또한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GDI)를 통해 식량안보, 산업화, 개발금융 등 분야에서 협력 채널을 확장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의 공동번영을 향한 지속적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의 역할을 다시 묻고 있다. CGTN은 “중국의 개방·혁신·포용 3축 전략이 아시아태평양의 안정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중국이 이 기조를 유지한다면, 아태 지역의 경제지형은 보호무역의 벽을 넘어 새로운 협력 모델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한은 단순한 정상외교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경제 속에서 ‘공동 번영’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려는 메시지로 읽힌다. 개방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중국은 그 방향을 ‘연결과 포용’으로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