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도심이 잠든 시간에도 쿠팡의 하얀 배송 트럭들은 불을 밝힌 채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문 다음 날 아침까지 상품을 배송해주는 이른바 ‘새벽배송’ 서비스는 맞벌이 부부나 아이를 둔 가정 등 수많은 소비자에게 생활의 편의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노동계가 “심야 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이라며 새벽배송 중단을 요구하면서, 소비자의 편익과 노동자의 건강권을 둘러싼 뜨거운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 새벽 노동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될 정도의 위험 요인이라는 점에서 심야 배송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밤 0시부터 5시까지 심야시간대 배송을 제한하는 방안을 공식 요구했고, 이는 곧 “새벽배송 전면 금지” 이슈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 추진에 대해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 쿠팡 배송기사들 다수가 오히려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일반 소비자들 역시 새벽배송 서비스 중단 시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새벽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한 결과 93%가 ‘0시~5시 배송 제한’에 반대했고, 95%는 “앞으로도 심야배송을 계속 하겠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70%는 “규제가 시행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밝혀, 새벽배송이 막힌다고 해서 낮 시간대 일자리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이 아님을 드러냈다. 한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64.1%가 “새벽배송이 중단되거나 축소된다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고,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소비자의 98.9%는 “앞으로도 계속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할 만큼 수요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편의 vs 노동자 건강권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새벽배송이 노동자 건강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과로 노동이라고 지적한다. 밤샘 노동은 수면 부족과 생체리듬 교란을 가져와 각종 질병 위험을 높이고, 실제로 쿠팡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과로사로 의심되는 사망 사고가 잇따랐다. 쿠팡 및 자회사들의 평균 산업재해율은 2020~2023년 약 6.7%로, 대한민국 전체 산업 평균(0.6%)의 10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이는 대표적 고위험 업종인 건설업 재해율(평균치 대비 4~5배)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더욱이 야간 운전이나 작업은 사고 위험뿐 아니라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심야노동 제한이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반면 소비자들과 상당수 배송기사들은 새벽배송이 이미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필수적인 서비스가 되었으며, 이를 갑작스레 금지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라고 반박한다. 실제 새벽배송 이용층에는 “장애아를 둔 부모, 거동이 불편한 노인, 평일에 장 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 등 절실한 이유로 새벽배송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새벽 시간대 배송은 낮보다 교통 체증이 적고 엘리베이터 사용이 편하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건당 수입이 높아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있다. 실제 설문에서 새벽배송 기사들은 야간배송의 가장 큰 장점으로 “주간보다 교통혼잡이 적다”(43%), “수입이 더 좋다”(29%) 등을 꼽았다. 또한 “주간에 개인시간 활용이 가능하다”(22%), “주간 일자리가 없어서 선택했다”(6%) 등 생계와 생활 패턴에 맞는 선택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현장 기사들 중 상당수가 새벽 노동의 자율성과 경제적 실익을 인정하고 있어, “정작 당사자(택배기사)들도 반대하는 금지 조치를 왜 외부에서 강요하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차량이 주차돼 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대선 당일 배송기사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주간 로켓배송(오전 7시∼오후 8시)을 중단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중단되는 것은 2014년 서비스 시행 이후 처음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차량이 주차돼 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대선 당일 배송기사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주간 로켓배송(오전 7시∼오후 8시)을 중단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중단되는 것은 2014년 서비스 시행 이후 처음이다.

 

“쿠팡이 차라리 낫다”는 슬픈 현실

이 논쟁의 한복판에서 천현우 작가는 현장의 현실을 짚는 ‘조건부 폐지론’을 제시했다. 과거 용접공으로 일한 경험을 책으로 펴낸 바 있는 천현우 작가는 “슬픈 현실이지만, 쿠팡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중소기업 평균보다 오히려 낫다”고 지적한다. 그는 “공장에서 일할 바에야 쿠팡이나 배민을 하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쓰며, 이는 쿠팡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의 노동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영세 사업장들에서 임금 체불이나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등 기본적인 노동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며,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높은 산업재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천 작가는 “새벽 배송 기사들에게 물어봐도, 주말에 일하면 주중에 쉬고 교대할 필요 없이 새벽 시간만 골라서 일할 수 있어서 차라리 낫다고 한다”며, 기존 중소기업 일자리 대비 쿠팡 새벽배송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측면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쿠팡의 밤샘노동이 절대적으로 좋다는 뜻이 아니라 “상당수 중소기업이 최소한의 노동자 대우도 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대안 없는 새벽배송 폐지는 ‘본말전도’

천현우 작가는 “나도 새벽배송을 없애고 싶지만 전제가 있다”면서, 그 전제란 **“노동자가 여타 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쿠팡의 밤샘 배송을 중단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임금과 근로환경을 갖춘 다른 일자리로 옮길 수 있는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장 새벽배송만 금지한다 한들 해당 노동자들은 어차피 더 열악한 야간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overall 노동조건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앞서 새벽배송 기사 설문에서도, 새벽배송이 막히면 다른 야간업종으로 이동하겠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천현우는 이렇게 현실을 무시한 채 도덕성만으로 접근하는 논의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새벽배송만 콕 집어 “비윤리적”이라며 규제할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그런 힘겨운 밤일자리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본말이 전도된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천현우의 이러한 현실론에 대해 “쿠팡과 중소기업 중 어디가 더 나은지를 따지는 건 ‘약자 올림픽’과 같다”는 반박도 나왔다. 서로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끼리 불행 배틀을 벌이게 만드는 논리일 뿐 아니라, 정작 책임져야 할 기업과 사회의 역할을 흐리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끼리 불행 배틀을 시키는 이런 논리가 한국을 장시간 야간노동 산재 공화국으로 만들었다”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천현우의 의도는 애초에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불행한지’ 경쟁하자는 데 있지 않다. 그는 현재 노동시장 전체가 최소한 쿠팡 수준의 대우조차 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음으로써, 문제 해결의 초점을 기업에 대한 책임 강화와 다른 일자리의 질 향상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근본 해법은 노동시장 전반의 개선

결국 새벽배송 논쟁은 우리 사회 열악한 노동환경 전반의 문제로 귀결된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찬반 대립 이면에는, 한쪽에는 “힘들어도 그나마 나은 일자리”로 밤샘 노동을 붙들고 있는 현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맞서 있다. 이 간극을 해소하려면 근본적인 노동시장 개선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한다. 플랫폼 기업인 쿠팡 같은 거대 업체들의 구조적 책임을 강화해 전체 노동조건을 상향 평준화하고, 동시에 중소기업들의 노동환경도 개선함으로써 전반적인 일자리 질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쿠팡은 핵심 배송인력을 대부분 특수고용 형태로 운영하여 정상적인 고용 방식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구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대로라면 심야노동에 지급해야 할 야간근무 가산수당(통상임금의 1.5배) 등을 면제받으며 인건비를 절감해온 셈이다. 앞으로는 플랫폼 분야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교대제 시행, 충분한 휴식시간 보장, 야간근로수당 지급, 정기 건강검진 지원 등 기본적인 보호 장치를 의무화해 밤샘 노동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더불어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영세 중소기업을 포함한 전체 산업의 노동조건 저변을 끌어올려, 노동자들이 굳이 쿠팡의 힘겨운 새벽노동에 매달리지 않고도 안정적인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천현우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새벽배송 폐지, 대안부터 마련하자.” 밤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선결과제 없이는 성급한 새벽배송 폐지도 자칫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다. 노동자의 삶 전반을 개선하는 큰 그림 없이 도덕적 판단만으로 서비스부터 없애는 일은 오히려 노동자에게 더 큰 고통을 전가할 위험이 있다. 새벽배송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 전체의 업그레이드와 맞물린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바로 여기에 귀착된다. 소비자의 편의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으려면, 서비스의 속도 경쟁을 완화하고 모든 일자리의 최저 기준을 끌어올리는 사회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노동 환경이 개선돼 밤샘 배송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게 될 때, 비로소 ‘쿠팡의 새벽배송’도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