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원격근무 비율이 팬데믹 이전 대비 5~7배 확대된 가운데, 한국 근로자들이 주요 선진국보다 재택근무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실제 경험률에도 불구하고 향후 재택근무 희망 비중은 5개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특히 ‘경력 단절 방지’ 효과에 대한 긍정도가 가장 높게 조사됐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한국·중국·미국·독일·일본 등 5개국 취업자 75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유행기 재택근무 경험과 향후 기대를 분석한 국제 비교 결과를 9일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팬데믹 당시 재택근무 경험률은 36.4%로 다섯 나라 중 네 번째 수준에 그쳤지만, 향후 재택근무를 원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3.4%로 가장 높았다. 중국 57.5%, 미국 43.5%, 독일 43.0%, 일본 24.2%가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글로벌 원격근무 환경 변화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스탠퍼드대 WFH Research 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영국의 주 3일 이상 재택근무자 비중은 각각 12%, 14%로 코로나 이전보다 약 3~4배 높아졌다. 반면 한국의 원격근무 실사용 비율은 OECD 평균보다 여전히 낮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선호도는 오히려 선진국을 크게 웃도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 근로자들이 재택근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로는 장시간 노동 구조와 돌봄 부담이 결합된 고용 환경이 지목된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44시간 많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여성의 가사·돌봄 시간은 남성의 2~3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 응답자들은 재택근무의 ‘경력 단절 방지’ 효과를 다섯 국가 중 가장 높게 평가했다(한국 0.47점). 미국(0.45점), 독일(0.32점), 중국(0.28점), 일본(0.10점)을 모두 상회한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사 결과가 단순한 근무 형태 선호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McKinsey(2023)는 전체 직무의 약 50%가 주 2~3일 재택근무가 가능한 형태라고 분석했으며, 미국 대기업의 90% 이상이 하이브리드 제도를 유지 중인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팬데믹 이후 사무실 복귀 기조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근로자 인식과 기업 정책 간 간극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재택근무를 경험하지 않은 근로자조차 상당수가 향후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특징이 나타났다”며 “이는 팬데믹 시기 경험보다는 노동시장 구조와 일·가정 양립 환경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5개국 공통적으로 재택근무 선호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업무 효율성과 일·가정 균형에 대한 긍정 평가”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과 협업 구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할지가 향후 제도 확산의 핵심 변수”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저출산·경력 단절 문제를 고려하면 재택근무는 노동공급 유지 전략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2024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최저 수준이며, 여성 고용단절률은 30% 안팎으로 추정된다. 노동시장 내 유연근무제 확대가 향후 고용 유지 정책의 주요 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재택근무 선호 증가와 달리 실제 제도화 속도는 국가 간 차이가 뚜렷하다. 미국·영국 등은 팬데믹 이후에도 원격근무가 고착화 단계에 접어든 반면, 한국·일본은 고용주 재량 비중이 여전히 높다. 노동시장에서는 “재택근무의 미래는 근로자의 선호보다 조직의 성과 관리 체계가 결정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조사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간한 ‘Issue Brief 311호’에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