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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의 첫 동력 비행 시간
1903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Wright Flyer'
비행 시간은 고작 12초, 비행 거리는 36.5미터. 보잉 747 여객기의 날개 길이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13년작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는 제로센 전투기를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모티브로,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쏘아 올린 이 딜레마를 서정적이면서도 잔혹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전쟁을 미화한다는 비판과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는 옹호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핵심 주제는 명확하다. 바로 ‘저주받은 꿈(Cursed Dream)’이다. 주인공 지로는 근시 때문에 조종사가 될 수 없지만, 꿈속에서 존경하는 이탈리아의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만나 비행기를 설계하는 꿈을 꾼다. 카프로니는 말한다. "비행기는 전쟁 도구도, 장사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수 산업체에서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수록, 그 비행기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병기가 된다. 영화는 아름다운 비행 장면과 파괴된 기체의 잔해를 교차시키며, 창조의 환희와 파괴의 죄책감이 뗄 수 없는 샴쌍둥이임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바람’은 시대의 광풍이자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지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시대의 모순 속에서도 자신의 꿈(비행기 설계)에 매진한다. 그러나 그 꿈의 끝은 참혹하다. 영화 후반부, 꿈속의 초원에서 카프로니는 지로에게 "자네의 10년은 어땠나?"라고 묻는다. 지로는 대답한다. "최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끝은 산산조각이 났죠." 그리고 그들 뒤로 지로가 만든 제로센 전투기들이 한 대도 돌아오지 못한 채 하늘로 날아간다. 이 장면은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품고 있던 본질적 비극을 시각화한다. 인간의 지성과 열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정체(기술)가, 가장 끔찍한 재앙(전쟁)의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 영화는 지로를 단죄하지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술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순수악’의 속성을 서늘하게 응시한다. 지로의 아름다운 비행기는 결국 ‘뼈의 피라미드’ 위를 나는 기계였다. 이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인류에게 선물한 날개가, 실은 피로 얼룩진 깃털로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라이트 형제 최초 동력 비행, 1903. 라이트 형제가 키티호크에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 Library of Congress
바람이 분다 (2013),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비행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그린 장면 ⓒ Studio Ghibli
1903년의 비행이 2024년의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명징하다. 비행기의 자리는 이제 인공지능(AI), 유전자 가위, 그리고 핵융합 기술이 대신하고 있다. 오픈AI(OpenAI)의 개발자들은 인류의 편의와 지적 확장을 꿈꾸며 코드를 짠다. 그러나 그 코드는 가짜 뉴스를 생성하고, 예술가의 저작권을 침해하며, 종국에는 킬러 로봇의 두뇌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라이트 형제가 느꼈던 그 희열과 공포의 경계선에 다시 서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윤리적 성찰의 속도를 언제나 앞지른다. "바람이 분다"는 영화의 대사는 오늘날 "변화가 몰아친다"는 경고로 들린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취해, 그것이 불러올 ‘돌아오지 않… 비행기’들의 행렬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키티호크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고, 기술이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멈추는 법을 모른 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무엇을 위해 날 것인가'이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있었던 12월 셋째 주,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인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존재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기술을 손에 쥐고 평화를 잃어버렸다. 영화 〈바람이 분다〉의 엔딩에서 지로는 파괴된 세상 속에서도 사라진 아내 나호코의 "살아요, 살아야 해요"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기술 문명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말라는, 혹은 이 모순된 삶을 견뎌내라는 절박한 호소다. 역사는 후진 기어가 없다. 우리는 비행기를 발명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하나다. 이 거대한 기술의 날개가 우리를 파멸의 태양으로 이끌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종간을 부여잡고 윤리적 균형을 잡는 것. 바람은 계속 불 것이다. 당은 그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 파국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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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행 거리
1903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Wright Flyer'
라이트 형제의 비행 성공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비행기는 정찰기에서 전투기로 변모했고, 인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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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전투기 변모 소요 기간
1914 Britannica 'Military aircraft'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의 황량한 모래언덕에는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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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개봉 연도
2013 IMDb 'The Wind Rises'
순수한 창의성으로 탄생한 기술이 어떻게 대규모 살상 무기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기술 발명가 책임 문제를 제기한다.
100년 이상 전 비행기 발명이 현대의 드론 공격, 항공 전쟁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통해 기술의 파급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람이 분다〉 같은 예술 작품이 기술과 인간의 도덕성 사이의 긴장을 탐구함으로써, 현대 사회가 마주한 과학 윤리의 핵심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