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12월 5째주 · 2025
[12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중력을 거스른 대가, ‘아름다운 저주’의 비상
영화로 세상을 보다

[12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중력을 거스른 대가, ‘아름다운 저주’의 비상

기사 듣기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의 황량한 모래언덕에는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Wilbur & Orville Wright)는 자신들이 만든 엉성한 나무와 천 조각, 그리고 가솔린 엔진이 결합된 기계 ‘플라이어 1호(Flyer I)’에 올랐다. 동생 오빌이 조종간을 잡은 이 기계는 굉음을 내며 땅을 박차고 올랐다. 비행 시간은 고작 12초, 비행 거리는 36.5미터. 보잉 747 여객기의 날개 길이보다 짧은 이 찰나의 순간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수만 년간 지표면에 묶여 있던 호모 사피엔스가 중력이라는 절대적인 족쇄를 끊어내고 ‘하늘’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이로써 인류는 2차원의 평면적 삶에서 3차원의 입체적 삶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신의 영역이었던 하늘을 훔친 대가는 혹독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 성공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비행기는 정찰기에서 전투기로 변모했고, 인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12월 셋째 주, 우리는 이카로스의 날개를 얻었지만, 동시에 추락할 수 있는 거대한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 성공이 던지는 가장 뼈아픈 질문은 ‘기술의 가치 중립성’에 관한 것이다. 오빌 라이트는 훗날 "우리는 비행기가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적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다면 기습 공격은 불가능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비행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살상 무기가 되었다. 드레스덴 폭격, 히로시마 원폭 투하, 그리고 현대의 드론 공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습의 시원은 키티호크의 모래언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우리는 근원적인 딜레마에 봉착한다.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기술을 진보시킨 발명가에게 그 기술이 초래한 파국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나는 그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는 변명이, 그 결과물에 의해 찢겨 나간 현실 앞에서 과연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13년작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는 제로센 전투기를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모티브로,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쏘아 올린 이 딜레마를 서정적이면서도 잔혹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전쟁을 미화한다는 비판과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는 옹호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핵심 주제는 명확하다. 바로 ‘저주받은 꿈(Cursed Dream)’이다. 주인공 지로는 근시 때문에 조종사가 될 수 없지만, 꿈속에서 존경하는 이탈리아의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만나 비행기를 설계하는 꿈을 꾼다. 카프로니는 말한다. "비행기는 전쟁 도구도, 장사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수 산업체에서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수록, 그 비행기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병기가 된다. 영화는 아름다운 비행 장면과 파괴된 기체의 잔해를 교차시키며, 창조의 환희와 파괴의 죄책감이 뗄 수 없는 샴쌍둥이임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바람’은 시대의 광풍이자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지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시대의 모순 속에서도 자신의 꿈(비행기 설계)에 매진한다. 그러나 그 꿈의 끝은 참혹하다. 영화 후반부, 꿈속의 초원에서 카프로니는 지로에게 "자네의 10년은 어땠나?"라고 묻는다. 지로는 대답한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끝은 산산조각이 났죠." 그리고 그들 뒤로 지로가 만든 제로센 전투기들이 한 대도 돌아오지 못한 채 하늘로 날아간다. 이 장면은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품고 있던 본질적 비극을 시각화한다. 인간의 지성과 열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정체(기술)가, 가장 끔찍한 재앙(전쟁)의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 영화는 지로를 단죄하지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술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순수악’의 속성을 서늘하게 응시한다. 지로의 아름다운 비행기는 결국 ‘뼈의 피라미드’ 위를 나는 기계였다. 이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인류에게 선물한 날개가, 실은 피로 얼룩진 깃털로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03년의 비행이 2024년의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명징하다. 비행기의 자리는 이제 인공지능(AI), 유전자 가위, 그리고 핵융합 기술이 대신하고 있다. 오픈AI(OpenAI)의 개발자들은 인류의 편의와 지적 확장을 꿈꾸며 코드를 짠다. 그러나 그 코드는 가짜 뉴스를 생성하고, 예술가의 저작권을 침해하며, 종국에는 킬러 로봇의 두뇌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라이트 형제가 느꼈던 그 희열과 공포의 경계선에 다시 서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윤리적 성찰의 속도를 언제나 앞지른다. "바람이 분다"는 영화의 대사는 오늘날 "변화가 몰아친다"는 경고로 들린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취해, 그것이 불러올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들의 행렬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키티호크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고, 기술이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멈추는 법을 모른 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무엇을 위해 날 것인가'이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있었던 12월 셋째 주,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인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존재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기술을 손에 쥐고 평화를 잃어버렸다. 영화 〈바람이 분다〉의 엔딩에서 지로는 파괴된 세상 속에서도 사라진 아내 나호코의 "살아요, 살아야 해요"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기술 문명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말라는, 혹은 이 모순된 삶을 견뎌내라는 절박한 호소다. 역사는 후진 기어가 없다. 우리는 비행기를 발명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하나다. 이 거대한 기술의 날개가 우리를 파멸의 태양으로 이끌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종간을 부여잡고 윤리적 균형을 잡는 것. 바람은 계속 불 것이다. 당신은 그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 파국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