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19년째 국회 문턱 맴돈 유령… 22대 국회 첫 ‘차별금지법’이 넘어야 할 산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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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 22대 국회의 시계가 멈춘 듯했던 ‘금기’ 하나가 깨졌다. 손솔 진보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국회 의안과에 서류를 제출했다. 2024년 5월,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안 4건이 자동 폐기된 지 1년 8개월 만의 재등장이다. 개원 이후 1년 넘게 침묵하던 22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나온 이 법안은 성별, 장애, 병력,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영역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테이블 위로 올렸다.

이번 발의는 ‘최소 요건’을 간신히 채운 10명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손솔 의원을 필두로 진보당,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소수 정당 의원들이 주축을 이뤘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인 이주희 의원만이 이름을 올렸다. 지역구 의원은 울산 북구의 윤종오 의원(진보당)이 유일하다. 이는 차별금지법이 국회 내에서 처한 ‘고립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구 표심을 의식해야 하는 거대 양당 의원들이 여전히 이 법안을 ‘뜨거운 감자’로 취급하며 거리를 두고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손 의원이 내놓은 법안은 기존 논의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차별 금지 대상 범위를 기존 ‘근로계약’에서 ‘노무제공 계약’으로 넓혀 특수고용직 노동자까지 포괄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소 제기 권한과 피해자의 집단소송 제도를 명시했다. 이는 구제 수단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동시에 재계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쟁점이 추가됐음을 의미한다.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곧 ‘좌절의 역사’다. 이 법안이 국회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19년 전인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가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을 때다. 당시 ‘성적 지향’, ‘학력’ 등 7개 차별 사유가 삭제된 채 누더기 법안이 됐음에도, 보수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발로 17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18대, 19대 국회에서도 의원 발의가 이어졌으나 거센 항의 전화와 낙선 운동 압박에 시달린 의원들이 스스로 법안을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21대 국회조차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의당 장혜영,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 4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10만 명의 시민이 동의한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까지 열렸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국민의힘은 “역차별 우려”를 내세워 반대했고, 민주당은 당론 채택을 미루며 침묵했다. 결국 21대 국회의 문이 닫히며 모든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19년
입법 표류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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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
국민동의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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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건
21대 폐기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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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1시부터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일대에서 열린 제7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전주, 인천 등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다.
2일 오후 1시부터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일대에서 열린 제7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전주, 인천 등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다.

 

쟁점은 여전히 팽팽하다. 보수 개신교계는 법안에 포함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문구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과 입증 책임의 전환(차별이 없었음을 사용자가 입증해야 함)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소송 남발을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이번에 추가된 ‘집단소송’ 조항은 재계의 방어막을 더욱 두껍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22대 국회의 첫 발의는 ‘침묵을 깼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은 19년째 입법 나태의 핑계로 작동해 왔다. 손 의원은 “국회 내 논의 방법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지만, 소수 정당의 힘만으로 거대 양당의 무관심과 외부 이익집단의 압력을 뚫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법률안을 넘어 한국 사회가 인권의 최저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를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2026년 1월, 다시 켜진 이 신호등 앞에서 국회는 또다시 ‘합의’라는 이름의 ‘회피’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19년 묵은 숙제를 끝낼 것인가. 공은 다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넘어갔다.

보수 개신교계재계(기업)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거대 양당)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19년간 반복된 '사회적 합의' 명분은 입법 의지의 부재를 가리는 핑계에 불과한 것인가?
소수 정당 주도의 이번 발의가 거대 양당의 무관심과 이익집단의 압력을 실제로 돌파할 수 있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