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 오늘 영면
지난 1월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한국 영화계의 거목, 배우 안성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순간이었다. 배우 정우성이 고인의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가슴에 품고 앞장섰다. 그 뒤를 설경구, 유해진, 박해일 등 한국 영화를 지탱하는 후배들이 따랐다. 그들이 운구한 것은 단순한 관이 아니라, 한국 영화 60년의 역사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온화했던 얼굴이었다.
1952년생인 고인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나, 한국 영화의 태동기와 중흥기를 온몸으로 관통한 산증인이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김기영의 걸작 <하녀>(1960)에서 보여준 천재 아역의 모습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아역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공백기를 갖고, 베트남전에 장교로 참전하는 등 배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연기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페이소스가 됐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얼굴이 됐다. <만다라>,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칠수와 만수>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80년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청춘의 방황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물이다. 그는 잘생기고 비현실적인 스타가 아니었다. 억압된 사회 속에서 좌절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무너지는 소시민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섰다. 대중이 그에게 ‘국민 배우’라는 호칭을 헌사한 것은 그가 흥행 보증수표여서가 아니라, 스크린 속 그가 바로 ‘우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투캅스>로 코미디 연기의 정점을 찍으며 대중성을 증명했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악역으로 변신해 서늘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실미도>와 <라디오 스타>를 거치며 그는 중년의 고독과 연륜을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가수의 매니저 역을 맡아 보여준 헌신적인 연기는, 화려한 조명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그의 실제 삶과 겹쳐지며 깊은 울림을 줬다.
그는 스크린 밖에서도 ‘어른’이었다. 수십 년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나눔을 실천했고,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후배 양성에 힘썼다. 영화계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중재자로 나섰고, 스캔들 하나 없이 철저한 자기 관리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혈액암 투병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그는 공식 석상에서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가발을 쓰고 부은 얼굴로도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무대 인사에 나서 관객과 약속을 지키려 했던 모습은 그가 왜 ‘영원한 현역’인지를 증명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날 영결식에서 동료들은 눈물 대신 고인을 향한 존경을 바쳤다. 그는 떠났지만, 130여 편의 영화 속에 남겨진 그의 눈빛과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안성기는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위로였고, 격동기의 대변자였으며, 풍요 속 빈곤을 겪는 현대인의 친구였다.
명동성당을 떠난 운구 행렬은 그가 평생을 사랑했던 관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장지로 향했다. 한국 영화사의 한 챕터가 닫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스크린이 켜지는 한, 안성기라는 이름은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