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거품 꺼진 뒤 드러난 ‘독성 숫자’… 한강은 지금 ‘호르몬’을 앓고 있다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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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도심 세차장은 묵은 때를 벗겨내려는 차량들로 붐빈다. 고압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거품은 차체를 뒤덮었다가 순식간에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눈앞의 더러움은 씻겨 내려가고 개운함만 남는 듯하다. 하지만 거품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위태로운 ‘숫자’들이 남는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데이터는 우리가 ‘깨끗함’이라 믿었던 행위가 강물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 시내 산업폐수 배출 사업장 111곳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의 64%를 차지하는 세차 시설 폐수에서 강력한 환경호르몬인 옥틸페놀이 리터당 최대 1,166.9㎍(마이크로그램), 노닐페놀이 339.2㎍까지 검출됐다. 111곳 중 옥틸페놀은 93.7%, 노닐페놀은 79.3%의 사업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세차장에서 쓴 세제가 배수구를 넘는 순간, ‘세정제’가 아닌 ‘생태 독성 물질’로 돌변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오염물질들이 하수처리장이라는 ‘안전판’마저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연구원이 공공하수처리장 4곳을 추적한 결과, 노닐페놀과 옥틸페놀의 제거율은 각각 61.8%와 54.6%에 그쳤다. 절반 가까운 독성 물질이 정화 과정을 비웃듯 통과해 한강으로 흘러들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한강 하류 지점의 노닐페놀 평균 농도는 0.320㎍/L를 기록하며, 유럽연합(EU)의 연평균 환경 기준(0.3㎍/L)을 넘어섰다. 옥틸페놀은 조사한 한강 5개 지점 모두에서 EU 기준치를 초과했다.

알킬페놀류로 불리는 이 물질들은 단순한 오염원이 아니다. 인체와 생물의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해 생식 기능을 저하하고,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내분비계 장애 추정 물질’이다. 이미 유럽과 선진국에서는 엄격하게 관리하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감시’라는 이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환경부가 2021년부터 이를 수질 감시 항목으로 지정했지만, 강제성 있는 ‘배출허용기준’은 아직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나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같은 전통적 지표만 잡고 있는 사이, 미량의 화학물질들은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

93.7%
옥틸페놀 검출률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54.6%
하수처리 제거율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0.320 ㎍/L
한강 노닐페놀 농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8.12 전국 집중 대회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일본 정부의 오렴수 해양 투기를 방기한다면 앞으로 또 다른 핵사고가 발생할 때 방사성 폐기물을 물로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낮춰버리겠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된다"면서 오는 12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8.12 전국 집중 대회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일본 정부의 오렴수 해양 투기를 방기한다면 앞으로 또 다른 핵사고가 발생할 때 방사성 폐기물을 물로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낮춰버리겠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된다"면서 오는 12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이 ‘규제의 공백’은 구조적 딜레마를 만든다. 세차업은 도시 곳곳에 점조직처럼 퍼져 있다. 개별 사업장이 배출하는 오염의 양은 적어 보일지 몰라도, 도시 전체가 뱉어내는 총량은 하수처리장의 용량을 위협한다. 기준이 없으니 행정 당국은 사업장에 고가의 전처리 시설을 설치하라고 강제할 수 없고, 영세한 세차장 업주들은 자율적으로 비용을 들여 정화 시설을 갖출 유인이 없다.

결국 한강의 높은 수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지체(lag)가 빚어낸 결과다. 50~60%에 머무는 하수처리장의 제거율을 끌어올리려면 오존 처리나 활성탄 흡착 같은 고도처리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 세차 업계에 규제를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세금으로 공공 처리 시설을 보강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출됐다”는 경고를 넘어선 “관리하겠다”는 결단이다. 유럽의 기준을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배출허용기준을 법제화하고, 하수처리장의 설계 기준을 미량 오염물질까지 거를 수 있도록 고도화해야 한다. 거품은 금세 꺼지지만, 강물에 스며든 독성은 생태계의 사슬을 타고 결국 우리 식탁과 몸으로 돌아온다. 정책이 머뭇거리는 시간만큼, 한강은 소리 없이 앓고 있다.

세차 업계 사업자환경부 및 행정 당국한강 생태계 및 시민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세차 폐수에서 배출되는 환경호르몬이 하수처리장마저 통과해 한강을 오염시키는 현실에서, 정부는 왜 아직도 강제적 배출허용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가?
오염 원인자인 세차 업계에 규제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 예산으로 하수처리 시설을 고도화할 것인가,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