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대통령 한마디에 20원 급락…'말'로 버티는 환율의 민낯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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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첫 질문으로 환율을 받았다. 그날 아침 원·달러 환율은 1480원을 돌파하며 장을 열었다. 대통령 발언이 나간 직후, 환율은 1467.7원까지 12원 넘게 급락했다. 말 한마디에 외환시장이 출렁인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대통령은 "특별한 대책이 있다면 이미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즉각 "무책임하다"고 공격했고, 시장은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가"라는 물음을 남겼다. 환율은 발언 직후 잠시 내렸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1470원대로 복귀했다. 대통령의 말이 시장을 잠깐 달랬을 뿐,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말 148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으로 한때 1430원대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새해 첫 거래일 1440원대로 다시 튀어 오른 뒤, 열흘 넘게 1470~1480원대를 오가고 있다. 전문가 85%가 '올해 평균 환율 1400~1450원'을 전망하지만, 1월 중순 이후 다시 1500원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왜 원화는 약한가. 한국은행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을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다. 미국 달러 강세, 한미 금리 차, 그리고 해외 증권 투자 급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025년 기준금리를 4.25~4.50% 수준으로 유지하며 긴축 기조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은 같은 해 5월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하해 2.75%까지 낮췄다. 금리 차가 벌어지면 달러 자산의 매력이 커지고, 원화는 약세 압력을 받는다.

여기에 '서학개미' 열풍이 더해졌다. 개인·기관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났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해외 증권 투자 비중은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만큼, 원화 가치는 떨어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도 변수다. 지난해 4월 원·달러 환율이 1487원까지 치솟은 건 미국의 상호관세 위협이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렸다. 이후 미국이 약달러 기조로 선회하며 환율이 내려왔지만, 언제든 관세 카드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불안은 남아 있다.

12원 급락
대통령 발언 후 환율 급락
기사 본문
45.1%
고환율 무책임 응답률
리얼미터
1.50~1.75%p 차
한미 기준금리 차
한국은행 / 연준

이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 얼마나 답했을까. "고환율은 뉴노멀"이라는 진단은 나왔다. "일본 엔화와 비교하면 원화 평가절하 폭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하겠다'는 대목에서 구체성은 빠졌다.

국민의힘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환율 대책이 없다는 대통령 발언은 시장 불안만 가속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3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고환율 대책이 있었으면 이미 했을 것'이라는 발언이 무책임하다는 응답이 45.1%로, '무책임하지 않다'(41.8%)를 웃돌았다.

물론 환율은 단일 국가 정책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미국 금리, 글로벌 달러 수급,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대통령 역시 "단일 국가의 정책만으로 단기간에 원상 복귀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다'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다른 메시지다. 시장은 후자를 기대했고, 전자를 들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뛴다. 원유, 곡물,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서민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수출 기업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해외 투자 손실과 외화 부채 부담은 커진다.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로 굳어지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와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어떤 수단을 쓸 수 있는가. 외환보유액 투입, 구두개입, 금리 조정 외에 구조적 처방은 무엇인가. 해외 투자 쏠림을 완화할 방법은 있는가. 그리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12원이 움직이는 시장에서, 말의 무게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정책 수단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했다. 그 발굴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는 밝히지 않았다. 환율은 하루 만에 12원을 오르내렸고, 일주일 뒤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두 달 뒤 1400원'이라는 전망이 맞을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외환시장 투자자·서학개미수입 의존 가계·중소기업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환율이 12원 움직이는 시장에서, 구체적 정책 없는 구두개입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미국 금리 차, 해외 투자 급증 등 구조적 원인이 지속되는 한,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