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꺼진 방에서 맞은 대한(大寒)
지난 1월 20일 오전, 수원역 광장. 체감온도 영하 20도. 역 앞 무료급식소 '정나눔터' 주변으로 노숙인 서너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시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받은 핫팩을 쥔 한 남성은 "발가락 감각이 사라졌다가 이걸 쥐니 그나마 버틸 만하다"고 했다. 24절기 가운데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이름값을 하듯 올겨울 최강 한파가 시작된 날이다. 경기 북부와 강원 내륙에는 한파경보가 내려졌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됐다. 행정안전부는 전날 오후 5시부로 한파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올렸다. 이 추위는 일주일 넘게 풀리지 않았다.
추위는 모두에게 찾아왔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추위는 아니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6년 1월 한 달간 한랭질환자는 165명, 사망자는 7명이다. 전년 같은 달(환자 120명·사망자 2명)과 비교하면 환자는 37퍼센트, 사망자는 3.5배 늘었다. 3년 새 가장 많다. 사망자 7명 가운데 80대가 3명, 60대 2명, 70대 1명, 50대 1명이다. 올겨울 전체 사망자 12명 중 5명이 1월 20일 이후 한파 기간에 숨졌다. 사망자 10명 중 3명은 치매 환자였다. 질병관리청은 "단순한 저체온 노출보다는 치매 등 기저질환과 생활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파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은 늘 같다. 한 평 남짓한 쪽방, 단열이 안 되는 낡은 단독주택, 역 지하도와 공원 벤치다. 경기도 각 시·군은 한파 시작과 동시에 '긴급 구조작전'에 나섰다. 수원시는 공무원 5명을 2개 조로 나눠 하루 2~3회 역 주변을 순찰했다. 성남시는 223곳에 한파 쉼터를 가동했다. 안양시는 하루 1회 쪽방촌 안부 확인을 실시했고, 평택시는 평택역 일대를 하루 2회 돌며 노숙인을 보호시설로 안내했다. 보건복지부는 1월 20일 17개 시도와 함께 노숙인·쪽방주민 보호대책 점검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대응 체계가 가동된 뒤에도 사망은 멈추지 않았다. 왜 그런가. 문제의 뿌리는 한파 자체가 아니라, 추위를 견딜 조건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2025년 말 펴낸 보고서 '에너지빈곤대응에서 기후복지로'가 이 격차를 숫자로 보여준다. 노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전체 가구의 63.6퍼센트 수준인데, 지출 대부분이 식비·의료비·난방비처럼 줄이기 힘든 항목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가구의 월평균 에너지비는 아파트 거주 가구보다 58퍼센트 높다. 벽과 창 사이로 열이 새는 집에서는 같은 보일러를 틀어도 방 안에 남는 온기가 다르다. 최근 수년간 전기요금이 다섯 차례 올라 누적 인상률이 35.9퍼센트에 이르렀는데, 최저소득층이 체감하는 에너지 부담 증가율은 78.3퍼센트로 전체 평균(58.7퍼센트)을 크게 넘는다. 정부가 지급하는 에너지바우처를 받는 가구 가운데서도 37퍼센트가 "집이 너무 추워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답했다. 바우처를 받아도 난방비에 턱없이 모자란 셈이다.
이 위에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포개진다.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를 넘겼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걸린 시간은 7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 국가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66세 이상 노인 소득 빈곤율은 39.7퍼센트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평균(14.8퍼센트)의 2.5배가 넘는다. 홀로 사는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약 79만 명, 정부 조사에서 처음 확인된 고독사 위험군은 전국 17만 명 이상이다. 전남·경북·강원처럼 노인 비율이 25퍼센트를 웃도는 지역일수록 노후 단독주택 비중도 높다. 난방 효율이 낮은 집, 소득이 끊긴 노인, 곁에 사람이 없는 하루.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지점에서 한랭질환 사망이 집중된다.
문제는 지금의 복지 전달 체계가 '신청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바우처는 본인이 신청해야 받는다. 한파 쉼터는 본인이 찾아가야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가 올겨울 가동한 한파 종합대책에는 47종 위기정보를 활용한 취약가구 발굴, 응급쪽방 65개실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80대 독거노인이 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 수 있는가. 등유 한 통 값이 아까워 보일러를 끈 쪽방 주민이 스스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혼자 사는 고령자의 경우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 '주변'이 부재한 사람에게 이 당부는 공허하다.
매년 같은 계절, 같은 풍경이 되풀이된다. 한파가 오면 위기경보가 올라가고, 쉼터가 열리고, 공무원이 순찰을 돌고, 복지부가 회의를 연다. 봄이 오면 통계표 한 장이 남는다. 사망자 수가 한 자릿수와 두 자릿수 사이를 오간다. 그 숫자가 유난히 커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돼야 예산이 붙는다. 그 사이 보일러를 끈 방에서 이불을 껴안고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은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이 겨울이 묻는 질문은 분명하다. 에너지 요금이 오를 때 난방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나라에서 '본인이 신청해야 받는' 복지 체계가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정말 닿고 있는가. 해마다 같은 위기 앞에서 같은 대응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꿨는가.
낡은 배관이 해마다 터지는 집에서 할 일은 터질 때마다 때우는 게 아니라 배관을 바꾸는 것이다. 에너지바우처 지원액을 실제 난방비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신청 없이도 수급 자격이 자동 연계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먼저다. 노후주택 단열·창호 개선 사업은 노인 밀집 지역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고독사 위험군 17만 명을 대상으로, 동절기만이라도 주 단위가 아닌 일 단위 안부 확인 체계를 돌릴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지자체 공무원 몇 명이 하루 2~3회 순찰하는 것만으로는 수십만 취약계층의 안전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한파 쉼터를 거부하는 노숙인도 있고, 도움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든 위험을 제도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절차에 막혀 지원을 못 받는 일, 위험을 인지조차 못 하는 사람을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일은 제도 설계의 결함이다. 보일러가 꺼진 방에서 다음 날 아침이 올지 모르는 겨울밤, 그 몇 시간을 메우는 것이 복지라면, 지금 그 일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