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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 1월 마지막주] 합의를 뒤집은 한마디, 관세 25%의 귀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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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산 자동차·의약품·목재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되올리겠다고 기습 선언했다. 불과 석 달 전 양국 정상이 합의한 세율을 한 줄짜리 게시글로 뒤집어버린 이 사태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협상 테이블 바깥의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일깨웠다.

경과를 짚어보면 이렇다. 지난해 10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자동차·부품 등 주요 품목의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확대하는 조건이 붙었고, 이를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문제는 국회 처리가 지지부진했다는 데 있다. 트럼프는 게시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훌륭한 합의에 이르렀으나 한국 국회가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한국의 입법 지연을 빌미로 합의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압박이었다. 이튿날인 27일에는 자동차·의약품 외에 상호관세까지 25%로 올리겠다는 추가 발언이 나왔고, 한국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워싱턴에 급파해 협의에 들어갔다.

충격은 곧바로 숫자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약 347억 달러로, 전체 자동차 수출의 49%를 차지한다. 관세가 25%로 돌아가면 완성차 한 대당 관세 부담이 약 6000달러, 연간 완성차 추가 부담만 9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왔다. 반도체까지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연간 5조1700억원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18.8%로, G7 국가 가운데 캐나다·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미국 시장에 이만큼 기대고 있는 구조에서 관세율 10%p의 등락은 산업 전체를 흔드는 지진과 다름없다.

이 사태의 이면에는 구조적 비대칭이 있다. 합의는 양자가 맺었지만, 뒤집는 것은 일방의 게시글 한 줄이면 족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관세 방침이 번복된 횟수만 최소 서른 차례를 넘긴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미국의 통상 정책은 예측 불가능 그 자체가 됐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을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변덕으로만 읽으면 본질을 놓친다. 한국이 대미 수출과 투자에 깊이 의존하는 한, 어떤 미국 대통령이 오더라도 관세는 가장 손쉬운 지렛대로 남는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의가 뒤집혔을 때 버틸 수 있는 다변화된 수출 구조를 갖추는 것이 더 급하다는 교훈을 이번 사태는 남긴다.

이 국면을 관통하는 책이 한 권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2002)은 오늘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보호관세와 정부 보조금으로 자국 산업을 키운 뒤, 정상에 오르고 나서는 같은 수단을 쓰려는 후발 국가에 자유무역을 강요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추적한 경제서다. 미국이 19세기에 40%가 넘는 고율 관세로 제조업을 일으켰으면서 2차 대전 이후에야 자유무역의 전도사를 자처한 과정을 장하준은 풍부한 통계로 밝혔다. 이 책과 지금의 관세 충격이 포개지는 대목은 둘이다. 먼저, 통상 규칙을 설계하는 쪽과 그 규칙을 따라야 하는 쪽 사이의 권력 차이가 이번에도 그대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한미 관세 합의는 형식상 대등했지만, 파기의 비용은 한국 쪽에 집중된다. 다음으로, 합의의 무게가 상대의 국내 정치에 따라 휘청이는 현실이다. 장하준이 추적한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통상 갈등이 150년 뒤 한미 사이에서 다른 옷을 입고 반복되고 있다. 올라간 뒤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이 책의 핵심 비유는, 합의한 뒤 관세를 되올리는 오늘의 장면과 거의 겹친다.

통상 주권, 수출 다변화, 협상의 지속가능성. 이 세 과제를 함께 풀지 않으면 관세 충격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하룻밤에 되지 않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되지 않는다. 동시에 합의를 지키는 것은 양쪽의 의무라는 원칙을 국제 무대에서 분명히 세우는 외교적 근력도 필요하다.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끌면서 빌미를 준 책임 역시 짚어야 한다. 상대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 쪽의 빈틈은 줄여야 한다.

트럼프의 게시글 한 줄이 흔든 것은 관세율만이 아니었다. 합의란 무엇이며, 약속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한국 경제 전체에 던져졌다. 사다리는 올라갈 때 쓰는 것이지만, 지키는 것은 올라간 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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