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443일 만의 심판, 대한민국은 내란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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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외부 고인물에 투영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헌법재판소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 기일을 하루 앞두고 재판관 회의를 연다. 서류 미제출, 대리인 선임 지연 등 윤 대통령 측의 무응답이 길어지고 있어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외부 고인물에 투영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헌법재판소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 기일을 하루 앞두고 재판관 회의를 연다. 서류 미제출, 대리인 선임 지연 등 윤 대통령 측의 무응답이 길어지고 있어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2026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무기징역.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443일, 대한민국 사법부는 현직 대통령이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한 행위를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으로 최종 판시했다. 30년 전 같은 법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 자리다. 한 세대가 지나 다시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지켜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가.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은 국회 진입을 시도했고, 소방청을 통해 언론사 다섯 곳에 단전·단수가 지시됐다. 야당 의원들의 체포 명단이 작성됐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국회의원 190명이 새벽에 본회의장에 집결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고, 6시간여 만에 계엄은 해제됐다. 물리적 사상자는 크지 않았으나, 군 병력이 민간 권력기관을 포위한 사실 자체가 1980년 이후 처음이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전두환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두 번째로 사형이 구형된 전직 대통령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서 계엄 선포가 헌법 77조 1항이 규정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으며, 야당의 입법 활동을 저지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목적의 국헌 문란 행위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군·경찰 지휘부 7명에 대한 선고도 이뤄졌다. 앞서 1월 21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징역 23년을 선고받았고, 2월 12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사법부가 일관되게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 판결은 단순한 형사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 헌정사의 좌표를 다시 찍는 사건이다. 1996년 8월 서울지법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을 일으킨 전두환에게 사형을, 노태우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그때의 재판은 군부 쿠데타라는 물리적 폭력에 대한 단죄였다. 이번 재판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합법의 외피를 두른 채 자행한 내란, 이른바 위로부터의 쿠데타에 대한 심판이다. 법원 스스로 이를 친위 쿠데타라 명명한 점은 민주주의가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제도 내부의 배반에도 취약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하지만 판결만으로 이 사건이 남긴 균열이 봉합되지는 않는다. 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간 합의로 사면·복권됐다. 사법적 단죄가 정치적 타협에 의해 무력화된 전례는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이기도 하다. 무기징역이라는 형량이 상징하는 무게와 별개로, 형이 확정되기까지 항소심과 대법원이라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사법부가 과거의 굴절을 되풀이하지 않을지는 아직 확정된 미래가 아니다.

이 사건 앞에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중학생 동호의 시선으로 시작해,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와 침묵을 여섯 개의 목소리로 직조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가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 뛰어든다. 소설은 그 열흘의 참상 이후에도 수십 년간 지속되는 고문 후유증과 자기 파괴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12·3 계엄과 5·18 내란은 시대도, 규모도, 결과도 다르다. 그러나 국가가 자국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군을 동원한 구조, 헌법이 보장한 권리가 하룻밤 사이에 정지당하는 공포, 그리고 사건 이후 기억을 둘러싼 진영 간 쟁투라는 세 가지 축에서 두 사건은 정확히 겹쳐진다. 소설 속 화자가 되뇐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기억을 희석하는 게 아니라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마모된다. 이 문장은 광주의 생존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 담장을 넘었던 시민들, 생중계 화면 앞에서 숨을 멈추었던 수백만의 시청자에게도 그 기억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민주주의, 법치, 기억. 이 세 단어가 오늘 우리에게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감시와 참여로 유지되는 체제라는 사실을 12·3은 증명했다. 190명의 의원이 새벽에 국회로 달려간 것은 제도가 작동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사람의 결정이 제도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법치는 판결로 시작되지만, 판결이 집행되고 기억되는 방식에 따라 완성되거나 훼손된다. 전두환의 사면이라는 선례가 존재하는 한, 사법적 정의는 늘 정치적 의지의 함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문제. 이미 이 사건을 내란으로 보는 시선과 적법한 대통령 권한 행사로 보는 시선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법정의 판결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분열선으로 남을 것인지는 결국 이 사회가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417호 법정에서 울려 퍼진 무기징역이라는 선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996년 같은 법정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이제 역사가 바로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 뒤 사면장이 발부되었고, 진실은 다시 유예되었다. 오늘의 판결이 30년 전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결말을 쓸 것인지는 법정 밖의 우리가 결정할 몫이다. 민주주의는 쟁취보다 유지가 어렵고, 유지보다 기억이 더 어렵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