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는 서울디자인재단이 DDP 카페에 수십억 원의 변상금을 부과하며 퇴거를 압박한 사례를 다뤘다. 같은 시기, 종로구 사직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시가 직접 요청해 입점시킨 사람들이 3년 만에 '무단점유자'로 전락한 곳, 돈의문박물관마을 이야기다.
종로구 신문로2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40채 남짓한 낡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60~80년대 서울의 골목을 박제해놓은 듯한 이 공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이다. 추억의 도시락, 레트로 게임장, 옛날 극장. 주말이면 7,000~8,000명이 몰려들던 이곳은 2026년 2월 현재 적막하다. 서울시가 마을을 폐쇄하고 녹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뒤, 울타리 공사가 시작됐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서울시가 직접 초대한 민간 운영자들이 하루아침에 '불법점유자'가 됐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원순 전 시장이 330억 원을 쏟아 2017년 조성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도시재생'의 상징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관 직후부터 방문객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019년 말 코로나19가 터지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유령마을'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서울시는 매년 약 20억 원의 운영비를 투입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인 2021년, 서울시 문화본부는 마을 활성화를 위해 편의시설 사업자를 적극 물색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선뜻 들어오겠다는 업체가 없었다. 여러 차례 공모에도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자,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업자를 확보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김은주 시니어어벤저스사회적협동조합 대표다.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실버극장 '허리우드극장'을 운영하던 그는 서울시의 제안을 받고 2021년 6월 돈의문박물관마을에 '학교 앞 분식'이라는 이름의 분식점을 열었다. 계약기간은 3년, 2024년 6월 25일까지. 김 대표는 사비를 털어 인테리어를 새로 했고, 레트로 콘셉트의 벽화와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시절, 하루 매출 10만 원이 안 되는 날도 허다했지만 버텼다.
그의 투자는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2023년 기준 주말 하루 관람객이 7,000~8,000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서울시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공공성 활성화의 대표 사례'로 홍보했고, 김 대표에게 표창까지 안겼다. 2024년 3월 서울시가 실시한 시설점검에서 그는 입주 업체 중 가장 높은 75점을 받았다. 재계약 기준 점수인 60점을 넉넉히 웃돌았다.
"나가라"——한 달 전의 통보
2024년 5월 27일. 서울시는 김 대표에게 "계약이 끝나니 퇴거하라"고 통보했다. 계약 만료일까지 불과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사전 협의도, 구체적인 사유 설명도 없었다. 김 대표만이 아니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던 민간 사업자 전체가 동일한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가 꺼낸 카드는 경희궁 일대 '역사문화공원' 조성이었다. 서울시는 2024년 7월, 경희궁지와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시민대학, 서울시교육청, 돈의문박물관마을 등 주변 공공부지 약 13만 6,000㎡를 하나의 역사문화공원으로 묶겠다고 발표했다. 서울광장 10배 규모. 2035년까지 4대 테마로 나눠 공간을 개선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그 1단계가 돈의문박물관마을 녹지화였다. 40개 건물 가운데 24개를 철거하고 시민 공원으로 바꾼다. 장기적으로는 사대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지 않은 돈의문까지 복원한다. 서울시 도시공간본부장 조남준은 "국가유산의 미래지향적 활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번째 희생자가 서울시 스스로가 초대한 민간 운영자들이라는 데 있다.
법의 사각지대——공유재산이라는 함정
김 대표가 맺은 계약의 법적 성격은 '사용허가'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서울시 공유재산이고, 공유재산의 사용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21조에 따라 5년 이내의 기간으로 허가된다. 갱신은 가능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민간 상가의 세입자라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최대 10년의 계약갱신 권리를 보장받는다. 투자금을 회수할 시간이 법으로 보호되는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4년 외식업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자금 회수에 필요한 평균 기간은 2년 7개월이다. 10년의 보호 기간은 최소한 흑자 전환 이후 7년간의 영업 기회를 보장한다.
그러나 공유재산에 입점한 사업자에게는 이 보호막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2조는 "국유재산법에 따른 국유재산 또는 공유재산법에 따른 공유재산의 임대차"를 적용 제외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DDP 카페가 그랬듯,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운영자들도 같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김 대표 측은 다른 논리를 꺼냈다. 공유재산법 제21조 제4항은 재난 상황에서 사용허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년 계약 가운데 2년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보낸 만큼, 연장 사유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입주 시점인 2021년 6월은 코로나19 초기처럼 강한 제한 시기가 아니었다"며 재난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표창에서 명도소송까지
김 대표는 2024년 서울시를 상대로 갱신거부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법원은 일단 퇴거 집행을 멈추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물러서지 않았다. 2024년 6월, 마을의 민간 운영자들을 '무단점유자'로 규정하고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김 대표에게는 기존 임대료의 약 10배에 달하는 변상금 5,000만 원이 부과됐다. 1심 본안소송에서는 서울시가 승소했다. 법원은 "돈의문마을 일대에 대한 정비계획이 추진 중인 상태에서 '학교 앞 분식'만 남아 있을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2025년 12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마을 내 민간 사업자 4곳 가운데 1곳은 자진 퇴거했고, 나머지 3곳은 서울시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서울시도 자발적인 투자와 운영을 유도해온 만큼 최소한의 보장을 해야 한다.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운영자를 단번에 내쫓는 것은 행정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다."
"축구장에 구청 짓기로 하면 매점도 못 하는 것"
서울시의 공식 입장은 단호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정책 변화에 따른 사용기간 종료일 뿐 행정조치에 법 위반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비유를 들었다. "축구 경기장에 구청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면 축구장 내 매점 운영도 못 하는 것처럼, 시의 정책결정에 따라 돈의문마을의 행정목적이 바뀌어 갱신을 못하는 데에 문제는 없다."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빠진 게 있다. 축구장 매점 주인은 스스로 그 자리에 들어간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운영자들은 서울시가 먼저 손을 내밀어 초대했다. 그리고 초대한 쪽이 3년 후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면서 변상금까지 물리고 있다.
거창한 발표, 표류하는 현실
돈의문박물관마을 철거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경희궁 일대 역사문화공원'이라는 거대한 구상이다. 그런데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회 임종국 의원(민주당, 종로)은 2025년 11월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사업이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경희궁 일대 역사문화공원 구상의 핵심 요소들은 대부분 좌초 상태였다. 서울시교육청 부지 교환은 교육청의 반대로 2024년 3월 이미 협의가 중단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이전 부지 검토도 반대에 부딪혀 제외됐다. 국립기상박물관과 서울시민대학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조차 없었다.
유일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 돈의문박물관마을 녹지화다. 임 의원은 "전체 계획을 보면 추진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돈의문박물관마을만 애꿎게 분쟁이 발생해 지역 크리에이터들의 사업이 중단됐다"며 "경희궁지 일대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아닌 돈의문박물관마을 철거사업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녹지화 설계용역마저 난항이다. 서울시는 2025년 1월과 2월, 1억 1,937만 원 규모의 '돈의문박물관마을 녹지화 및 공간 재구성 설계용역' 입찰을 두 차례 냈지만, 참여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어 연거푸 유찰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업 내용에 비해 예산이 지나치게 낮아 최소 2억 원 이상이어야 참여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2025년 2월 세 번째 공고의 개찰 결과가 예정됐지만, 이후 낙찰 여부에 대한 공개 보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330억 원으로 지은 마을을 허물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위에 무엇을 세울지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쫓기고 있다.
반복되는 패턴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이야기는 DDP 카페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닮았다. 공유재산이라는 법적 분류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차단하고, 행정의 방향 전환이 입점자의 투자와 삶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구조. 서울시가 먼저 요청하거나 유치한 사업자에게 상을 주고 홍보까지 해놓고, 정책이 바뀌자 '불법점유'라는 딱지를 붙이는 패턴.
2026년 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피해 시민단체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행정이 공익을 빌미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같은 날 염태영 의원(민주당, 수원무)은 공공시설 임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과 일방적 퇴거를 막기 위한 이른바 '양치승 5법'을 대표 발의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민간투자법, 부동산등기법, 공인중개사법, 공유재산법 등 5개 법률의 개정안으로, 공공자산 임대 시 귀속 여부 및 사용기간의 사전 고지 의무화, 불가피한 사용 제한 시 변상금 면제 등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DDP에서, 돈의문에서, 서울혁신파크에서, 강남 민간주차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 사례들은 개별 분쟁이 아니라 제도의 구멍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허가 연장은 가능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법적으로는 맞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의무가 아니라면, 시가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람을 불러들인 뒤 내쫓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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