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8월 29일, 영국 의회는 공장법(Factory Act)을 통과시켰다. 9세 미만 아동의 공장 노동을 금지하고, 9-13세는 하루 9시간, 14-18세는 1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획기적인 법안이었다. 리처드 오스틀러와 마이클 새들러가 주도한 10시간 노동운동의 결실이었다. 맨체스터와 리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7살 아이들의 참상을 고발한 의회 보고서는 영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산업혁명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동노동 반대운동.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아동노동 반대운동은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간성의 저항이었다. 공장주들은 아이들의 작은 손이 기계 틈새를 청소하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자녀를 공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빈곤의 대물림, 교육 기회의 박탈, 신체적 학대가 일상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묘사한 것처럼, 산업사회는 아이들의 순수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숀 베이커 감독의 The Florida Project는 21세기 미국의 숨겨진 아동 빈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근처의 허름한 모텔에서 살아가는 6살 무니와 그의 엄마 헤일리의 이야기다. 브룩클린 프린스가 연기한 무니는 천진난만하지만, 그가 뛰노는 공간은 빈곤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윌렘 대포가 연기한 모텔 매니저 바비만이 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유일한 어른이다. 영화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면서도, 그 이면의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The Florida Project (2017), 숀 베이커 감독. ⓒ Production Company
19세기 영국의 공장과 21세기 미국의 모텔은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된다. 두 공간 모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주변부다. 공장의 아이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다면, 모텔의 아이들은 소비사회의 잉여가 되었다. 무니가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꿈의 왕국은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다. 빈곤은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훔친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19세기보다 나아졌는가?
아동노동 반대운동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법률 조항이 아니다. 그것은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문명의 진보였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아동노동은 사라졌지만, 빈곤 속 아동의 문제는 형태를 바꿔 지속된다. 무니와 같은 아이들은 노동하지 않지만, 구조적 방치 속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부모, 교육 기회의 불평등, 주거 불안정은 새로운 형태의 착취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아니면 반복되는가? The Florida Project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니는 친구와 함께 디즈니월드로 달려간다. 그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모든 아이들에게 꿈꿀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833년의 개혁가들이 오늘날의 모텔을 본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우리는 정말로 모든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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