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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째주 · 2024
[8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 속 혁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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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 속 혁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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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2일 새벽 2시, 이라크군 10만 명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었다.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기갑부대는 불과 7시간 만에 쿠웨이트 시티를 점령했고, 에미르 자베르 알 아흐마드 알 사바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인구 200만의 작은 산유국이 중동의 군사 강국 앞에 무릎을 꿇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선포하며, 이 침공이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오스만 제국 시절 바스라 주의 일부였던 쿠웨이트를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역사 사건

쿠웨이트 이라크 침공.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800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진 이라크에게 쿠웨이트의 석유는 절실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루메일라 유전에서 불법 채굴을 했고, OPEC 할당량을 초과 생산해 유가를 떨어뜨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 실업률 상승, 민심 이반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는 고전적인 정치 전략이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삼키는 약육강식의 논리, 그것은 20세기 말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규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군은 7개월간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장지량 감독의 Battle of Wits는 기원전 370년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류덕화가 연기한 묵가의 혁리는 조나라의 요청으로 작은 성 양성을 지키러 온다. 10만 대군을 이끈 조나라 장군 항영규는 양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한다. 성주와 백성들은 절망에 빠지지만, 혁리는 묵가의 비공술과 지혜로 성을 방어한다. 그는 단순히 군사 전략가가 아니라 전쟁의 무의미함을 아는 철학자다. 성 안의 여인 일월과의 사랑, 백성들의 고통, 권력자들의 탐욕이 교차하며 전쟁의 본질을 드러낸다.

영화 스틸

The Battle of the Warriors (2006), 장지량 감독. ⓒ Production Company

양성과 쿠웨이트, 23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두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선 작은 나라의 운명, 침략을 정당화하는 강자의 논리,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의 고통. 혁리가 지킨 것은 성벽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었듯, 쿠웨이트 침공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도 영토나 석유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문제였다. 영화 속 혁리는 말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막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그러나 현실의 후세인은 전쟁을 선택했고, 걸프전이라는 더 큰 참화를 불러왔다.

34년이 지난 지금도 강대국의 침략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가자, 미얀마에서 약소국의 주권은 여전히 위협받는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탐욕은 변하지 않았다. 드론과 미사일이 활과 투석기를 대체했을 뿐, 전쟁의 명분과 논리는 전국시대와 다르지 않다. 국제법과 유엔이 있어도 힘의 논리 앞에서는 무력하다. 쿠웨이트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해방됐지만,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조국이 사라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혁리가 양성을 떠나며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 "성은 지켰지만 전쟁은 막지 못했다." 쿠웨이트도 결국 해방됐지만, 중동의 평화는 요원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인류는 언제쯤 전쟁이 아닌 대화로, 침략이 아닌 공존으로, 정복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묵가의 겸애 사상이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치부되듯,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열망도 그저 몽상에 불과한 것일까?

공식 예고편

The Battle of the Warriors (2006) — 장지량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