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4월,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 바르샤바. 한때 4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살던 이곳은 16km의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바르샤바 게토. 그 안에는 폴란드 라디오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도 있었다. 1939년 9월 23일, 독일군의 포격이 시작되던 날에도 그는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다. 라디오 방송국이 무너질 때까지. 그리고 5년 후인 1945년, 폐허가 된 바르샤바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똑같은 곡을, 똑같은 방송국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바르샤바 게토 피아니스트 생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스필만의 생존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1943년 4월 19일, 게토 봉기가 시작되고 나치는 남은 유대인들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보냈다. 가족과 함께 기차역에 끌려간 스필만은 한 유대인 경찰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2년간 그는 바르샤바의 폐허 속을 떠돌았다. 때로는 폴란드 저항군이, 때로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그를 숨겨주었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도움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왔다.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 그는 폐허에서 발견한 스필만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해방할 때까지 그를 보호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The Pianist는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드리앵 브로디가 연기한 스필만은 말이 거의 없다. 대신 그의 눈빛과 몸짓이 모든 것을 말한다. 영화는 게토의 참상을 기록하듯 담담하게 보여준다. 거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발코니에서 던져지는 휠체어의 노인, 아무 이유 없이 총살당하는 사람들. 그러나 폴란스키는 선동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마치 스필만이 그랬듯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피아니스트가 폐허 속에서 공중에 손가락을 움직이며 상상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The Pianist (2002), 로만 폴란스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스필만의 이야기와 The Pianist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영화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스필만을 살린 것은 피아노 실력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었다. 유대인 경찰, 폴란드 저항군, 그리고 독일군 장교까지. 서로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이 보여준 작은 선의가 그를 살렸다. 호젠펠트가 스필만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 것도 그를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4년의 세계는 다시 분열과 증오의 언어로 가득하다. 가자 지구의 폭격 소리가 들리고,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이 파괴된다. 인종과 종교, 국가의 이름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스필만이 살아남은 바르샤바 게토의 역사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무대와 등장인물이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벽을 쌓고, 게토를 만들고, 타자를 배제한다. 디지털 게토, 경제적 게토, 문화적 게토.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스필만은 전쟁이 끝난 후 35년을 더 살며 연주를 계속했다. 자신을 구해준 호젠펠트는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 영화의 마지막, 노년의 스필만이 연주하는 쇼팽의 그랜드 폴로네이즈는 승리의 찬가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과 증언의 무게가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게토에 가두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를 게토에서 꺼내줄 것인가. 아니, 정말로 우리는 게토 밖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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